조선국왕 vs 중국황제
신동준 지음|역사의아침|536쪽|2만원

창업(創業)과 수성(守成), 경장(更張)과 쇠퇴(衰退)라는 순환은 근대 이전 왕조 시대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 국가와 기업들도 마찬가지로 이런 과정을 거친다. 봄·여름·가을·겨울, 계절의 순환에서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그때그때 필요한 리더십과 돌파구가 있을 것이다.

조선 국왕과 중국 황제는 전근대시기 조공체제와 국가의 규모 등을 고려할 때 직접적인 비교의 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한 나라의 군주로서 창업하고 수성해야 하는 본질적 특성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점에서 조선 국왕과 중국 황제의 리더십을 역사를 통해 들여다보는 이 책의 시도는 신선하다.

조선과 명(明)의 창업은 거의 비슷한 조건에서 이뤄졌다. 13세기에 전무후무한 세계 제국을 이룩한 몽골(원) 제국은 14세기 후반에 이르러 무력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명을 세운 주원장과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원 제국의 쇠퇴를 기회로 창업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새 왕조를 개창하는 과정은 전혀 달랐다. 주원장은 반군(叛軍)의 선봉에 서서 새 제국의 주인이 된 반면, 이성계는 정도전을 비롯한 신흥사대부가 주도한 쿠데타의 간판으로 선택된 측면이 강했다. 주원장은 원 제국의 쇠망을 초래한 홍건적 출신이었던 반면, 이성계는 고려 도성을 장악한 홍건적을 격퇴하면서 명성을 쌓은 신흥 군벌이었다.

두 사람의 다른 출신 배경은 리더십의 차이를 낳았다. 명망가 군인 출신인 이성계는 고려의 유신(遺臣)을 자처한 사류(士類)들을 철저히 제압하지 못한 반면, 빈주먹으로 시작한 주원장은 냉정하게 전조(前朝)의 잔당들을 잘라냈다. "이성계는 건국 초기에 설득과 강압을 동원해 이들을 철저히 제압해야 했다. 그러나 주원장과 달리 이를 행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주원장은 적수공권(赤手空拳)에서 출발한 까닭에 냉정한 판단력과 과감한 결단력을 겸비한 반면 이성계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훗날 사림(士林)들이 발호하며 붕당(朋黨) 정치를 여는 빌미가 되었다"고 말한다.

조선 태종과 명나라 영락제는 창업과 수성을 함께 이룬 인물이다. 두 사람 모두 창업자의 뒤를 이을 가장 강력한 후보였으나 주변의 견제로 궁지에 몰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이후 목숨을 건 승부수를 던져 자신의 힘으로 보위(寶位)를 차지한 점도 같다. 부국강병책과 왕권(황권) 강화로 성세(盛世)의 기틀을 마련한 점도 비슷하다. 저자는 "영락제는 부황(주원장)이 다져놓은 군강신약(君强臣弱)의 기조를 확고한 통치체제의 틀로 정착시킴으로써 명의 수명을 300년까지 연장시키는 대공(大功)을 세웠다"고 말한다. 태종 역시 "선수를 쳐 정도전을 제압하지 않았을 경우 조선은 정씨의 나라로 바뀌었을 공산이 크다"며 "태종이 자신의 재위기간 중 손에 피를 묻히며 개국공신과 외척세력들을 말끔히 소탕해 막강한 왕권의 기반을 닦지 않았다면 세종의 성세는 구현되기 어려웠다"고 말한다.

조선 인조와 청(淸) 태종은 역대 조선 국왕과 중원의 패자(覇者) 중에서 가장 극적으로 직접 대면한 경우다. 한 사람은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치욕적인 예(禮)를 올리며 목숨을 구걸하고, 다른 한 사람은 단 위에 서서 이를 내려다보며 훈계하는 희비극을 연출했다. 인조가 이렇게 된 이유는 당시 국제정세를 헤아리지 않고 명의 천명(天命)이 지속되리라는 헛된 믿음 때문이었다. 저자는 "당시 인조를 비롯한 조선의 군신은 천자(天子)는 오직 한족(漢族)이 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면서 "가공할 만한 자폐(自閉)의식이었다"고 말한다. 반면 청 태종은 "하늘이 도우면 필부(匹夫)라도 천자가 될 수 있고, 하늘이 화를 내리면 천자라도 외로운 필부가 되는 것"이라며 "이제 짐(청 태종)이 대군을 이끌고 와 너희 팔도(八道)를 소탕할 것이다. 너희가 어버이로 섬기는 명나라가 장차 어떻게 너희를 구원하는지 두고 볼 것이다"라고 조선을 질타했다.

신문기자 출신으로 동양정치사상 박사 학위를 지닌 저자는 시대의 군왕(君王)들을 거침없이 훼예포폄(毁譽褒貶)하며 역사를 종횡무진 서술하면서 필봉을 휘두른다. 때로는 그 해석에 동의하기 어렵고, 때로는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도 든다. 저자는 강력한 왕권을 매우 높이 평가하는데, 그런 인식이 지나치면 전제정치를 동경하는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일관된 사관(史觀)으로 중국과 조선의 역사를 꼼꼼히 서술하면서 역사의 교훈을 이끌어내려는 노력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저자가 다루는 조선 국왕과 중국 황제는 앞서 서술한 여섯 사람 외에 세조와 명 선덕제, 선조와 만력제, 광해군과 청 태조, 효종과 순치제, 숙종과 강희제, 영조와 건륭제, 고종과 광서제 등 모두 20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