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부처와 공기업 임직원의 해외 출장과 업무추진비 사용 실태 등을 점검하는 감사원 직원들이 해외 공관 감사를 떠나면서 나랏돈으로 관광을 즐기는 등 예산을 낭비하고 있었다. 업무추진비 사용도 의심스러운 내역이 많았다. 감사원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정갑윤 한나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통해 그 실태가 드러났다.

감사원 A국장은 2007년 5월 15일 밤 11시55분 인천공항을 출발했다. 15박16일 일정으로 요르단·리비아·덴마크·중국에 있는 한국대사관에 대한 감사를 떠나는 것이었다. 이들 4개국은 중점 점검이 필요한 공관들로 선정돼, 국장이 현장지도에 나서는 것이라고 감사원 문서에 나와 있다.

항공기는 다음날 오전 10시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 도착했다. 하루 동안 현지 공관을 둘러본 A국장은 17일 저녁 암만 공항으로 이동해 점검 대상이 아닌 이집트 카이로로 향했다. 이집트 고대 유적지에서 5일을 체류한 그는 21일 밤 독일행 비행기를 탔다. 감사 대상 지역인 리비아가 이집트 주변에 있지만 그곳엔 가지 않았다. 베를린에서 하룻밤을 머문 그는 22일 밤 덴마크에 도착했다. A국장은 23일 그곳에서 감사를 벌였다. 공관 점검은 하루 만에 끝이 났다. A국장은 다음날 아침에도 중국이 아닌 이탈리아행 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24일 로마에 도착해 하루를 묵었고 다음날 저녁엔 밀라노로, 그 다음 날엔 스위스 취리히로 갔다. 스위스에선 2박 3일 머물렀다. 29일 오후 1시 드디어 감사 대상지인 중국 베이징에 도착한 그는 '반나절' 감사를 벌인 후 다음날 귀국했다. 4개국 현장지도에 나선 A국장은 3개국 감사에 사흘을 할애했고, 한 곳(리비아)은 아예 빼먹었다. 15일 중 9일을 감사와 무관한 곳에서 잤다. 그는 비즈니스클래스 좌석을 이용해 항공요금은 모두 598만5300원이었다. 15일간 숙박비와 식비·경비가 예산에서 지급됐다. 3121달러(350만원)였다.

A국장만 이런 게 아니었다. 당시 세계 각지로 출장을 떠난 감사원의 상당수 직원들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출장 중간에 관광 일정을 끼워넣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B과장이 이끄는 러시아·우즈베키스탄 감사팀 4명은 모스크바 일정을 끝내고 우즈베키스탄으로 가야 했으나 터키 이스탄불로 가서 2박3일을 보냈다. 이스라엘·요르단·제네바 감사팀 소속 4명도 출장 목적지와는 다른 이집트 카이로와 오스트리아 빈을 찾았다. 역시 해외공관의 근무 및 외교 활동비지출 등 국가예산 집행을 감시하는 게 주업무였다. 2007년에는 공기업 감사들이 남미 이과수 폭포 등에 외유성 출장을 떠났다가 감사원에서 혹독한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

정갑윤 의원측은 "감사원은 2007년뿐 아니라 이후에도 해외 감사를 떠나면서 출장 목적과 전혀 관련없는 휴양지를 끼워넣은 것으로 밝혀졌다"고 했다. 감사원이 최근 4년간 '외교통상부 및 재외공관 운영실태 감사'에 쓴 예산은 8억3000만원이었고, 투입한 직원은 113명이었다.

업무추진비를 사용하는 과정에서도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감사원은 다른 정부부처처럼 부서마다 신용카드를 지급받아 업무추진비 결제 명목으로 사용한다. 업무추진비는 당연히 업무 회의나 행사를 가질 때 쓰는 예산이다.

지난 3월17일 감사원 행정지원실은 한 음식점의 식대 65만원을 업무추진비 카드로 해결했다. 결제는 45만원과 20만원 두 번에 걸쳐 이뤄졌다. 이렇게 나눠 결제하는 방식은 행정지원실뿐 아니라 다른 부서의 카드 사용 내역에서도 다수 발견됐다. 정갑윤 의원측은 "업무추진비를 한 번에 50만원 이상 사용할 땐 증빙 서류와 참석자 명단 등을 갖춰야 하는데 이를 회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에 49만원, 48만원, 47만원 등 50만원을 살짝 밑도는 금액이 많았다. 반면 공개적인 행사에선 한번에 수백만원을 계산했다.

업무추진비를 직원 식대로 전용(轉用)한 의혹도 있었다. 감찰관실은 지난 3~4월 두 달 동안 중국집에서 20차례 업무추진비 카드를 썼다. 사용 시간대는 점심·저녁 식사 시간대에 집중됐고 금액은 1만~11만원 수준. 건설환경감시국, 자치행정감시국도 인근 중국집에서 비슷한 시간대에 업무추진비를 집행했다. 감사원도 다른 공무원과 마찬가지로 매월 급식비를 받으며, 야근을 하면 특근매식비를 받는다.

감사원은 최근 한국방송광고공사에 대한 감사를 벌여 "업무추진비를 직원 밥값으로 사용하는 등 법인카드를 방만하게 사용한다"면서 '주의'를 줬다. 감사원 업무추진비는 2008년 2억7860만원, 2009년 3억8016만원이었으며 올해는 5억6805만원으로 대폭 늘어났다.

감사원측은 "2007년 일부 해외 감사팀의 일정이 문제된 적이 있었고 이후엔 그런 일이 없도록 주의하고 있다"며 "업무추진비를 쓸 때마다 증빙서류를 갖춰 잘못 사용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