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토빛과 먹빛, 지극히 단순한 구도. 그러나 그 속엔 바다와 섬의 심연에 묻힌 제주의 슬픈 역사와 아픔, 쓸쓸함이 응축돼 있었다. 작가의 가슴 속에서 농익어 터져 나온 누렇고 검은 바다와 파도가 내 가슴 속까지 치고 들어오는 것 같았다. 누군가 '한라산과 제주, 아니, 대마도를 줘도 바꾸지 않을 그림을 만났다'는 감탄을 쏟아냈다. 절절하게 공감했다. 5년 전 제주 서귀포 기당미술관에서 변시지 화백의 그림과 그렇게 처음 만났다. 그는 '폭풍의 화가'라 불렸다.
혼자 보기엔 못내 아쉬운 그의 그림을 울산 시민들이 함께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가졌다. 하지만 '호당 1000만원'에 달한다는 고가의 작품을 육지로 실어 나르는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기당미술관 측은 매번 "육지 전시 계획이 없다"고만 했다.
이후 수년에 걸친 정성이 통했던 걸까. 올 6월 제주 방문 때 희망의 끈을 잡았다. "뭍으로 나가 전시할 계획이 생기면 울산에도 꼭 가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드디어 올 가을 서울을 시작으로 부산과 대전 등에서 5년 만의 변시지 개인전 일정이 잡혔고, 미술관측은 '울산 전시회' 약속을 지켰다. 11월 1일부터 10일까지 열흘간 울주문화예술회관에서 '변시지展'이 열린다.
이번 전시회에는 '검은 바다'를 주제로 한 변시지만의 독특한 대작 30점이 선보인다. 제주의 거센 바람과 파도가 누런 황토빛과 검은색으로 독특하게 표현돼 있다. 모든 것을 날릴 듯한 폭풍과 검은 바다에는 생명력과 광기, 적막이 공존한다. 중심에서 벗어난 변방의 삶이 준 고독이 화폭 곳곳에 스며 있다. 변시지만의 개성적인 이 화풍은 '제주화'라고 불린다. 제주의 지역성과 토착 정서를 담아낸 그의 작품들은 "가장 한국적"이라는 평을 얻고 있다.
그의 그림에는 세계가 먼저 주목했다. 2007년부터 세계 최대 박물관인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 작품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생존 한국 작가로는 처음이며 전시기간은 10년이다. 해외 유명 인터넷사이트에서 전 세계 100대 화가 중 한 명으로 꼽고 있기도 하다. 제주도 서귀포에서 태어난 그는 다섯 살 때 건너가 자란 일본에서 청년 시절부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자신 속의 민족적 기질을 깨닫고 1957년 고국행을 택했다. 1975년 중앙 화단에 대한 미련마저도 털고 스스로 유배자가 돼 제주로 돌아와 35년째 살고 있다. 문의 ☎(052)248-32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