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한국주택학회 회장(토지주택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서울 시내 영구임대주택에 빈집이 날 때면 빈곤층 입주 희망자들이 몰려 경쟁률이 15대1까지 올라간다. 그러나 문제는 '집단적 격리'다. 막상 영구임대아파트에 입주하고 나면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된다. 저소득층을 집단적으로 모아놓은 탓에 이들이 다른 계층과 섞이지 못하고 사회로부터 '따돌림'당하는 '낙인 효과'가 나타난다.

영구임대주택단지에 실태 조사를 나가보면 주민들이 자기네끼리도 이웃을 기피하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아이들에게 롤모델이 없는 점, 주위 어른들을 보고 철들기 전부터 자립보다 복지에 의존하는 생활 태도를 먼저 배우는 점도 큰 문제다.

①섞여서 살게 하라

대단위 단지가 아니라 다른 계층 사이에 표나지 않게 섞여 살 수 있는 형태의 영구임대주택을 개발해 보급해야 한다. 미국·영국에서는 정부가 중산층 거주지역의 일부 주택을 사들여서 빈곤층에 염가에 임대하는 경우가 있다. 가난한 사람만 공공임대주택에 들어가는 한국과 달리 유럽은 공공임대주택이 물량도 많고 형태도 다양해서 중산층 이상이 입주자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②다양한 '주택 사다리'를 만들라

영구임대아파트 주민들이 올라갈 수 있는 다양한 '주택 사다리'를 만들어야 한다. 현재 영구임대아파트 외에 국민임대주택·매입임대주택·전세임대주택이 있지만 공급이 수요에 못 미친다. 각각의 유형 사이에 칸막이마저 높아 입주자들이 한 가지 유형의 임대주택에서 다른 유형의 임대주택으로 옮겨가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점을 해결해야 영구임대아파트 주민들이 사다리를 한 칸씩 밟고 올라가듯이 여러 공공임대주택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정부 도움 없이 일반 주택에서 살아갈 수 있다.

③일자리와 주거대책을 연계하라

어른들이 일을 찾아야 아이들이 무기력을 배우지 않는다. 그러려면 영국 노동당 정부가 일자리 알선과 주거 제공을 연동시킨 것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영구임대아파트 입주자 10명 중 6명 이상이 실업 상태다. 이들이 일자리를 찾으려면 입주자 본인의 준비·역량 부족과 부실한 기술훈련·취업알선 시스템이 개선돼야 한다. 정부가 영구임대아파트 입주자들에게 단순한 자활사업 일자리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말고 장차 더 나은 일을 할 수 있도록 기술을 가르치고, 이력서 작성·면접 요령을 교육해야 한다.

일단 취직이 성사된 뒤에는 취업과 보육을 패키지로 제공해야 한다. 아이를 맡길 곳과 일하는 곳이 모두 영구임대아파트단지 인근에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