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메이크어위시 재단' 회의실로 박지훈(35)씨가 아들 은총(7)이를 안고 들어섰다. 얼굴에 검붉은 반점이 돋은 은총이는 낯선 어른들이 서 있자 아버지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나윤도(24·한양대 기계공학부 3년)씨가 "은총아, 형이랑 여기 있는 아저씨들이 내일 같이 뛸 거야. 자신 있지?"라며 등을 쓰다듬자 그제야 은총이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박씨는 "도와주시는 분들인 줄 아는지 낯을 가리는 은총이가 금세 마음을 여는 것 같다"고 했다.
박씨 부자(父子)와 이들은 16일 오후 경기도 하남시 미사동 경정공원과 한강시민공원에서 열리는 철인 3종 경기에 출전한다. 박씨는 은총이가 탄 보트를 끈으로 연결한 채 1.5㎞를 헤엄치고, 자전거에 은총이를 태우고 40㎞를 달린 뒤 은총이가 탄 휠체어를 밀며 10㎞를 뛸 예정이다.
은총이는 '스터지웨버 증후군(한쪽 뇌가 위축되고 몸이 마비되는 병)'을 갖고 태어났다. 은총이는 이 병을 앓다가 '클리펠-트레노우네이-베버 증후군(하반신 중 한쪽만 빠르게 성장하는 병)'과 '오타모반(피부에 반점이 나타나는 병)' 등 5가지 난치병을 더 얻었다. 박씨는 "가는 병원마다 '길어야 10개월 살 거다', '더는 손쓸 방법이 없다'고 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은총이는 7년간 7차례 대수술을 이겨내고 여전히 부모 곁을 지킨다. 비록 오른쪽 뇌 손상, 왼쪽 손발 마비에 녹내장으로 시력마저 잃어가고 있지만, 은총이는 걸음마도 뗐고 내년에 학교 갈 준비도 하고 있다. 박씨는 "너무 힘들 때는 혼자 외국으로 도망가고 싶기도 했고 자살할 생각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그 작은 몸으로 고통을 이겨내는 아들이 나를 붙잡아줬다"고 했다.
지난 2007년 박씨는 은총이를 휠체어에 태우고 뛰는 마라톤을 시작했다. 세상에 은총이를 보여주면 치료해주겠다고 나서는 의사가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은총이 가족에게 돌아온 것은 또 다른 아픔뿐이었다. 검붉은 반점을 본 아이들은 "괴물"이라고 놀렸고, 어른들은 "어쩌다 아이에게 화상을 입혔느냐"며 혀를 차곤 했다. 그때마다 부부는 은총이를 안고 눈물을 쏟았다. "아프게 낳아서 엄마 아빠가 너무 미안해"라고 울부짖으며….
박씨는 지난 7월 난치병 아이를 돕는 '메이크어위시' 재단에 철인 3종 경기에 참가하겠으니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박씨는 "미국에서 장애아들을 데리고 철인 3종 경기를 하는 아버지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며 "우리도 그렇게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재단은 은총이네가 참가할 대회를 알아봤지만, 번번이 장비와 안전 문제로 거절당했다. 국내에선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재단은 은총이 부자만 뛰는 철인 3종경기 대회를 열기로 했고 푸르덴셜생명이 후원자로 나섰다.
대회가 성사되자 또 다른 '기적'이 일어났다. 철인 3종 경기 인터넷 사이트에서 은총이 철인 3종 경기 소식을 접한 사람들이 은총이와 함께 뛰겠다고 나선 것이다. 강창훈(56·한의사)씨는 "42세에 도전해 한의사가 되고 50 넘어 철인 3종 경기에 도전해 완주하면서 배운 '노력의 힘'을 은총이와 같이 뛰면서 전해주고 싶다"고 했다. 공경은(41·직장인)씨는 "나도 어렸을 때 소아마비를 이겨냈는데 은총이처럼 난치병을 앓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며 참가를 신청했다. 공씨는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아직도 오른쪽 다리로는 5㎏ 이상을 들어 올리지 못한다고 한다. 재생불량성 빈혈을 이겨내고 레슬링 선수가 된 김형수(22)씨는 "은총이 아버지 사연을 보고 투병할 때 저를 뒷바라지해주신 부모님 생각이 났다"며 10㎞ 마라톤을 함께 뛰기로 했다. 철인 3종 경기 전문가는 경험이 없는 박씨를 훈련해주겠다고 나섰다. 같이 뛰지는 못해도 결승점에서 은총이의 완주를 기다리겠다는 사람들도 100여명이나 됐다.
박씨는 경기 사흘 전까지도 하루 5시간씩 고된 훈련을 했다. 수영과 사이클은 늘 박씨가 앞서지만, 마라톤은 항상 은총이가 박씨를 앞지른다고 한다. 박씨가 뒤에서 휠체어를 밀고 뛰기 때문이다. 박씨는 "이번에도 아들이 저보다 먼저 결승선을 통과할 것"이라며 "반드시 완주해서 도와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난치병을 앓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