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년간 미국과 영국 대학의 거시경제학 강의는 시간낭비였을 뿐이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의 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제학에 대한 불신이 커가고 있는 가운데 크루그먼은 누구보다 신랄하게 경제학을 비판했다. "좋게 말해 봐야 놀랄 만큼 쓸모가 없고, 나쁘게 말하면 극히 해롭기까지 하다."
▶크루그먼의 독설은 신자유주의적 주류 경제학을 겨냥한 것이다. 주류 경제학도 반격에 나섰다. 뜻밖에도 역사학자인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가 선봉에 섰다. 두 사람은 작년 4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미국 국채 금리가 치솟고 있는 것을 놓고 처음 맞붙었다. 퍼거슨은 "지나친 재정 확대정책이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낳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크루그먼은 "금융위기 때 지나치게 떨어졌던 국채 금리가 정상화되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후 퍼거슨은 파이낸셜타임스, 크루그먼은 뉴욕타임스를 통해 '칼럼 전쟁'을 벌였다. 크루그먼은 세계 경제가 아직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각국 정부가 긴축에 나설 게 아니라 경기부양책을 더 펴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퍼거슨은 재정 확대정책은 인플레이션을 낳을 뿐이라며 재정건전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크루그먼과 퍼거슨은 각각 케인스학파와 고전학파, 진보와 보수 진영을 대변하고 있다.
▶두 사람의 논쟁은 감정싸움으로 치닫기도 했다. 크루그먼은 퍼거슨을 "좋은 역사학자이지만 경제학의 기본을 모른다"고 비꼬았다. 퍼거슨의 시각을 '중세 경제학'으로 폄하하기도 했다. 퍼거슨은 "때로는 역사학자가 경제학자에게 도전할 수 있다"고 받아쳤다. "케인스의 노예가 된 경제학자들은 역사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경제학적 권위로는 크루그먼이 월등 앞서지만 퍼거슨도 '현금의 지배' '금융의 지배' 같은 경제사(史) 저서를 내놓으며 쌓아 온 내공이 만만찮다.
▶신문 지면에서 논쟁을 벌여왔던 두 사람이 13일 서울에서 다시 맞붙었다. 미국 경제의 회복 전망, 추가 재정정책의 필요성, 금리정책 방향을 놓고 서로 언성을 높이며 팽팽히 맞섰다. 두 사람의 논쟁은 쉽게 승부를 가리기 어렵다. 앞으로도 더 치열하게 전개돼야 한다. 세계 경제위기와 그로 인한 경제학의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