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은 유난히 노벨화학상을 싹쓸이하고 있는가. 극미량(極微量)을 따지는 화학분야이기 때문에 세밀하고 꼼꼼한 작업에 능한 일본인들이 유리한 것인가.

6일 발표된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미국인 1명과 함께 일본인 2명이 발표됨으로써 노벨 화학상을 받은 일본인 학자는 7명으로 늘었다. 이는 미국 60명, 독일 28명, 영국 26명, 프랑스 8명에 이어 5위에 해당한다. 일본은 특히 1981년 첫 수상을 시작으로 80년대 이후에만 7명의 수상자를 냈다.

일본 언론들은 이번에 일본인 2명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유기화학 분야에 대해 '오이에게이(ぉ家芸)'라는 말을 썼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독특한 기예'라는 뜻이다. 유기화학 분야야말로 일본이 세계를 선도해왔고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분야라는 얘기다. 지금까지 화학상을 받은 7명 중 5명이 이 분야이고, 1명은 고분자 유기화학 분야다. 1명만 제외하고 모두 유기화학 계통이라는 얘기다. 앞으로도 이 분야에서만 노벨상 수상을 기다리는 학자가 4~5명은 된다고 한다.

일본이 유기화학 분야 육성에 들어간 것은 1920년대부터였다. 일본 자연과학 분야 종합연구소의 상징인 '이화학연구소(약칭 理硏ㆍ리켄)'가 1917년 설립된 이후 집중한 분야가 입자물리학과 함께 유기화학이었다. 유기화학은 각종 약품이나 비료 등 실용생활로 직결되는 분야였기 때문이다. 리켄은 이미 1920년대부터 연구소에 벤처기업 개념을 도입, 비타민· 합성비료 등 수많은 제품을 생산해냈다.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일본인 네기시 에이이치 교수(75·미 퍼듀대)가 6일 프랜시스 코르도바 퍼듀대 총장으로부터 축하 선물을 받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전쟁으로 잠깐 중단됐던 유기화학 분야의 성과는 1960년대 고도성장기에 다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화학공업의 핵심인 유기화학 분야에는 이때부터 고급인재들이 몰렸다. 경제성장에 필요한 실용성 높은 학문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 1960~70년대 한국의 대학에서 화학과에 인재가 몰렸던 것도 그 영향이었다.

일본에서는 1965년을 시작으로 거의 매년이다시피 이 분야에서 새로운 발견이 이어졌다. 일본 학자들의 이름을 딴 '~반응' '~커플링(결합)'이 수도 없이 나왔고, 이는 산업화로 바로 이어졌다. 2001년에 화학상을 받은 노요리 료지(野依良治) 이화학연구소 소장도 두 종류의 형태로 이뤄진 화학물질로부터 필요한 형태의 물질만을 합성하는 데 성공, 신약 분야에 크게 기여했다. 이번에 노벨상을 받은 스즈키 아키라(鈴木章) 홋카이도대 명예교수의 연구결과도 항암제ㆍ혈액강하제 등 약품과 액정 제조 등 폭넓은 분야에 응용되고 있다.

일본 마이니치(每日)신문은 "유기화학 분야는 탄소 결합방법이 극미량만 달라져도 완전히 다른 성질의 물질이 나오기 때문에 세밀한 작업에 능한 일본인들에게 적합할 수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비판도 찬사도 아닌 있는 그대로 일본을 보라]

[[Snapshot] 2010년 노벨상 수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