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과 신흥국이 너나할 것 없이 자국 통화의 강세 억제에 나서고 있다. '환율 전쟁'은 이번 주말 열리는 국제통화기금(IMF)ㆍ세계은행 연차 총회를 앞두고 더욱 가열되고 있다. 수출을 촉진하는 '싼 통화'는 주로 신흥국의 전유물이 돼 왔다. 그러나 선진국도 경제 전망이 불확실해지고 쓸 수 있는 카드가 많지 않아 약(弱) 통화를 선호하고 있다.
이번 주 환율 방어의 포문을 연 곳은 브라질이었다. 귀도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은 4일(현지시각) 외국인 투자자들의 브라질 채권 투자에 매기는 세금을 2%에서 4%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해외 자본 유입으로 통화 강세가 촉발되자 지난해에 이같은 금융거래세를 도입했고, 이번에 세율을 높인 것이다. 만테가 재무장관은 이미 지난 주 "환율 전쟁이 발발했다"고 공식적으로 언급, 위기감을 표명했었다.
여기에 다른 신흥국들도 가세했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은 선물환 포지션과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 투기 거래에 대한 공동 검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최근 원화 환율 급락세에 투기적인 거래가 영향을 미쳤다는 판단 하에 대응에 나선 것이다. 한국 외에 인도와 태국도 투기적인 외환 거래의 통제를 고려하고 있다. 태국의 경우 바트화 가치는 13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어 당국의 우려가 크다.
가장 놀라움을 안겨준 국가는 일본이었다.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은 5일 시장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기준금리를 '제로(0)'로 낮춘다고 밝혔다. 또 국채 등 자산 매입을 통해 경제에 자금을 공급하기로 했다. 달러당 엔화 환율이 15년만에 최고치 부근에서 올라오지 않고 있는 가운데(엔화 강세), 엔고(高)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은 심화됐고 BOJ는 칼을 빼들었다.
로버트 죌릭 세계은행 총재는 "돈은 수익률을 쫓기 마련"이라며 "선진국에서 (저금리 영향으로) 수익을 내기 어려워져 신흥국에 자금이 몰리고 있는데 이는 선진국의 통화 강세를 유발할 뿐 아니라 부동산,과 일부 상품 등의 거품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환율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의 이례적인 초저금리에 있다. 이들은 금융위기 이후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기준금리를 내렸고 시중에 거대한 자금을 공급, 이는 결국 통화 가치 약세라는 결과를 수반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다른 국가의 통화 가치는 높아졌다.
게다가 미국이 여태까지 쏟아부은 돈이 경제를 살리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판단 하에 시중 자금을 더 늘릴 것으로 예상되는 점은 달러화 약세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을 낳고 있다.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BOJ의 결정에 앞서 4일 "연준의 자산 매입이 경제에 기여했다고" 강조, 추가적인 양적 완화(시중 자금 확대) 가능성을 높였다. BOJ가 이번 통화정책회의에서 전격적으로 제로금리(0)에 돌입한 것도 이같은 미국의 양적 완화로 달러화 대비 엔화 가치 상승이 더욱 가팔라지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미국과 일본의 중앙은행이 '양적완화의 악순환'에 진입했다는 진단도 나온다. 다이와 연구소의 노구치 마이코 이코노미스트는 "양국이 경제 성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통화정책 완화에 따른 악순환이 목격되고 있다"며 "BOJ의 다음 행보는 연준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은 적정 인플레이션을 유지하고 두자릿수에 이르는 실업률을 해소하기 위해, 일본은 디플레이션을 방지하고 엔화 가치를 끌어내리기 위해 양적 완화에 나설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