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마라톤이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친구이자 경쟁자로 주목받아 오던 25세 동갑내기 박영훈과 원성진의 레이스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각축해온 세월이 벌써 20년을 바라본다. 사람들은 또 한 명의 85년생 소띠 최철한까지 포함해 셋을 '송아지 3총사'라고 부르곤 했다.

둘은 초등학교 2학년 때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처음 만났다. 먼저 치고 나간 것은 원성진이었다. 98년 봄에 입단한 원성진이 그해 신예프로10걸전서 준우승하는 등 탄탄대로를 달릴 때 박영훈은 아직 장외(場外)에 머물러 있었다. 연구생을 자퇴, 찬바람 맞으며 전국아마추어대회를 휩쓸던 박영훈은 8전9기 끝에 99년 말 비로소 프로가 됐다.

(왼쪽부터)원성진 九단, 박영훈 九단.

하지만 박영훈은 프로 진출 후 놀라운 가속도를 보여주며 빠르게 스타덤에 오른다. 입단 2년 만에 첫 타이틀을 따내더니 세계대회서도 세 차례나 정상에 섰다. 원성진은 2007년에 이르러서야 첫 본격 타이틀인 천원을 손에 넣었다. 잇단 불운으로 준우승에 머문 것도 여러 번이었다.

지금까지의 맞대결 성적서도 박영훈은 분명한 우세를 잡아왔다. 총 15회를 겨뤄 10승을 거뒀으니 3판 중 2판꼴이다. 2007년 이후 박영훈은 원성진을 상대로 7연승을 달렸는데, 제13기 GS칼텍스배 도전기(박영훈 3대0 승리)도 이 전적에 포함돼 있다. 지난 7월 물가정보배 결선서 3년 만에 승리한 원성진이 "워낙 많이 져서 기대하지 않았다"고 소감을 말했을 만큼 기나긴 연패였다.

그러나 올해 원성진이 보여주고 있는 폭발력은 엄청나다. 제38기 명인전 최종 결승 5번기에 선착한 데 이어 제15기 GS칼텍스배 도전자 결정전에도 올라와 있다. 7일 벌어질 GS배 도전자 결정전 상대가 바로 박영훈이다. 명인전에선 이창호 대 박영훈전 최종 3국(10월 5일) 승자가 원성진과 우승을 다투게 된다.

박영훈이 만약 이창호를 제치고 명인전 결승 진출권을 따낸다면 GS배 도전자 결정전을 포함해 원성진과 합계 '6번기'를 치르게 된다. 흡사 70년대 말 조훈현과 하찬석 간에 펼쳐졌던 '20번기'를 연상케 하는 빅카드가 될 수 있다.

물론 '이창호 변수'는 여전히 강력하다. 최근 슬럼프라는 우려를 뒤엎고 30일 명인전 준결승 2국서 박영훈에게 설욕, 상대 전적을 14승9패로 벌렸다. 10여 일 앞으로 다가온 결혼을 자축하기 위해서라도 박영훈, 원성진을 연파하고 명인성(城)에 재입성해야 한다. 지난 기에도 명인성 성주는 이창호였다.

그러나 3관왕인 이창호에 비하면 현재 무관(無冠)인 원성진과 박영훈이 훨씬 더 절박한 입장이다. 명인전 결승에 직행해 있는 원성진 쪽이 박영훈보다 상대적으로 약간 느긋할 뿐이다. GS배에선 둘 간의 단판 대결 승자가 현 타이틀 보유자인 조한승 九단과 13일부터 도전 5번기를 치르게 된다.

최근 페이스는 원성진 쪽이 더 좋아 보인다. 올 시즌 45승14패로 다승 5위, 승률 4위에 올라 있다. 현재 9연승 중이며, 7월 말 이후만 따지면 20승2패란 무시무시한 전적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박영훈은 항상 꾸준하다. 51승19패로 다승 2위, 승률 7위다. 한 차례 11연승이 포함돼 있다.

박영훈이 단단한 수비형이라면 원성진은 묵직한 공격력을 자랑한다. 이런 두 기사가 최근 바둑에서 약속이나 한 듯 실리를 먼저 취하고 타개에 승부를 거는 바둑을 구사 중이다. 수 읽기에 자신이 넘친다는 증거다. 평생 동반 레이스를 펼쳐 갈 둘은 이번 가을 몇 판이나 만나게 될까. 그리고 승자는 누가 될까. 새로운 20년을 향한 '동갑 라이벌'의 뜀박질은 끝없이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