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후 3시 30분 서울 잠실 롯데월드 공연무대에 환자복 차림의 휠체어를 탄 사람이 등장했다. 동시에 "난 꿈이 있었죠"로 시작하는 가요 '거위의 꿈'이 울려 나왔다. 무대 앞에 앉은 소아암·백혈병 환자와 가족 등 700여명의 시선이 휠체어에 앉은 환자에게 쏠렸다. 객석의 아이들은 대부분 오랜 투병 끝에 피부가 창백하거나 검게 타들어가 있었다.

몇 초 후에 환자복을 입은 이가 검은 장막으로 들어가더니 순식간에 화려한 옷을 입은 마술사로 변신했다. 마술사 김영재(25)씨가 마술봉을 휘두르자 '꿈☆은 이루어진다'고 적힌 현수막이 아래로 펼쳐졌다. "저도 어렸을 때 백혈병을 앓았어요. 하지만 어릴 적에 마술사의 꿈을 가졌던 제가 이렇게 무대에 서서 꿈을 이루고 있습니다." 환자와 가족들이 일어나 손뼉을 쳤다. 주변을 지나던 나들이객들도 삼삼오오 김씨의 마술공연에 흠뻑 젖었다.

어릴 적 백혈병으로 4년이나 고생하고 이겨낸 25세 마술사 김영재씨. 롯데월드에서 백혈병·소아암으로 힘들어하는 어린이와 가족들을 위로하는 마술쇼를 보여주고 있다.

김씨는 7살 때 백혈병에 걸렸다. 어느 순간부터 걸으면 발이 아프더니 배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고향인 목포의 작은 병원에선 병명이 나오지 않았다. 서울의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았더니 '백혈병' 진단이 나왔다.

6개월의 입원과 3년의 통원치료가 이어졌다. 김씨는 "어린애여서 6개월이나 방사선 항암치료를 받으니 지칠 수밖에 없었다"며 "하지만 힘든 환경 속에도 내가 버텨낼 수 있었던 건 마술 덕이었다"고 했다. 서울에서 치료받던 중 우연히 길거리 마술공연을 봤는데 이후 머릿속에서 계속 그 신기하고 화려한 모습이 아른거렸다고 한다.

그는 4년 만에 백혈병의 공포에서 벗어났고, 2004년 마술학과에 진학해 마술사가 됐다. 2006년 우연히 백혈병·소아암 봉사동아리에 관한 신문 기사를 보고 투병 중인 아이들을 위한 마술 자원봉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김씨는 2008년 5월 5일에는 자신이 치료받았던 한양대병원의 백혈병 환우들 앞에서 마술공연을 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날 공연은 한국백혈병소아암 협회가 전국의 백혈병·소아암 환자를 위해 제정한 '천사의 날'을 맞아 열렸다. 소아암·백혈병이 전염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아 주자는 뜻도 담겼다.

공연을 본 혈액암 환자 이주은(9)양은 "저 오빠도 병을 앓았는데 건강하네. 그리고 마술사까지 됐잖아"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양의 어머니 김춘화(39)씨는 "약물치료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는 딸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린다"고 했다. 그러곤 "마술 하는 저분처럼 주은이도 꼭 꿈을 이룰 수 있을 거야"라며 딸을 꼭 안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