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덕주(50) 감독은 아침 일찍 방송에 출연한 뒤 귀가해 다시 잠들었다. 'U-17 여자월드컵'에서 귀국한 지 사흘째 되는 날이다. 경기도 분당에 있는 집 근처에서 전화를 걸자, 그는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대낮의 햇볕에 눈이 부신 듯했다.

"자고 깨어나니 유명해진 격이다. 당초 시합 갈 때는 관계자 몇 분만 공항에 배웅 나왔다. 동행한 취재기자도 없었는데 돌아오니…."

그의 어조는 낮고 느렸다.

―최 감독에 대해 '온화하다' '부드럽고 인자하다'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고들 평한다. 실제 본인과 일치하는가?

"내 성격과 표현방식이 그렇다. 욕설하고 쥐어팬다고 해서 애들(선수)이 좋게 되는 것이 아니다. 간혹 나로서는 질책을 하는데도 아이들이 별로 무서워하지 않더라. 그렇다고 내가 승부를 쉽게 포기하는 사람은 아니다. 솔직히 나는 지는 걸 몹시 싫어한다."

―매스컴에서는 '아버지 리더십'이라고 표현했다. 우리 시절 아버지란 엄하고 쉽게 정(情)을 표시하지 않는 존재였는데.

"나도 이상하게 생각했다. 사실 애들은 '할아버지 리더십'이라고 부른다. 작년 아시아대회에서 우승하자 애들이 '켄터키프라이드치킨 할아버지'라고 별명을 붙였다. 우리 집안은 유전적으로 머리가 빨리 하얗게 센다. 작년에 대회 나갈 때 염색을 안 해 머리가 온통 하얗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 때는 염색하고 나갔지만 시간이 흐르자 뿌리에서 흰머리가 올라와 위로는 검고 아래로는 하얘 얼룩덜룩해졌다."

최 감독과 나는 동갑(同甲)이었다.

―할아버지 소리를 듣는 건 좀 억울하지 않은가?

"청와대에 초청받았을 때 대통령께서 선수들한테 그 말을 듣고는 '아직 젊은데 무슨 할아버지냐'고 하시더라."

―감독이 화를 낼 줄 모르면 선수들이 말을 듣지 않거나 공동의 목표에 따라오지 못할 때도 있지 않을까?

"물론 잘못된 것까지 칭찬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감독이 소리를 지르면 선수들은 깜짝 놀라며 얼어붙는다. 감독의 눈치만 살핀다. 그런 공포심에서 나오는 플레이는 결코 창의적일 수 없다. 축구에는 수학처럼 공식이 있는 것이 아니다. 같은 상황에서 여러 플레이가 나올 수 있다. 답이 많다는 뜻이다. 기본 공식만 알려주고 그다음부터는 선수들이 자기만의 해결방식을 찾도록 해야 한다. 또 아이들 눈높이에서 봐야 할 필요도 있다. 분명 틀렸는데도 애들이 말을 안 들을 때는, 자기 나름대로 굽힐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걸 인정해줘야 한다. 지도자가 한발 물러나서 나중에 얘기하면 다 돌아오게 된다."

―집에서 키우는 자녀들에게도 이런 '온화한' 방식을 썼나?

"딸만 셋이다. 그러니 여자애들(선수) 심리에 대해 좀 더 알게 됐는지 모른다. 딸을 키우다 보니까 생리대까지 사다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부모로서 야단 한번 안 칠 수 있겠나. 내가 언성을 높여도 나보다는 엄마를 더 무서워한다. 그런데 자기 자식은 마음대로 안 되는 부분이 있더라. 우리 선수들보다 자식들이 더 천방지축이었다."

최덕주 감독은“승부차기 때 진심으로 '너희들이 잘못 차서 져도 괜찮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월드컵 우승 소감을 묻자 "내가 아닌 어떤 감독이 이 자리에 앉았더라도 이 선수들을 데리고 우승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는 지나친 겸사(謙辭)처럼 들린다.

"겸양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정말 좋은 지도자들이 많이 있다. 그 사람들이 감독을 맡아 더 좋은 지도를 했으면 좀 더 편안하게 우승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정말 피 말리는 시합을 했다. 애들에게 그런 시합을 시킨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됐다. 국민들에게 좀 편안하게 시합하는 걸 보여줬으면 좋았는데…."

―우승을 하려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승부를 결정짓는 것은 실력인가, 운(運)인가?

"실력도 운도 다 필요하다. 진짜 중요한 것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우리 애들은 기량에서 밀렸지만 이길 수 있다는 집념을 갖고 붙었다."

―조별 리그에서 우리는 독일팀에 0:3으로 졌는데도 최종 우승을 했다. 이게 '공정한' 결과라고 할 수 있는가?

"독일팀과의 시합이 가장 쉬웠다. 그 시합은 져도 괜찮았기 때문에 공격수를 거의 뺐다. 하지만 그 뒤의 다른 팀과는 질 수 없는 시합이었다. 독일팀은 최고의 전력이었지만 8강에 올라와 상대에게 한 골을 먹고 탈락했다. 우리는 나이지리아팀과 붙어 5골을 먹고도 6골을 넣고 이겼다. 당시 우리 애들은 대부분 부상 상태였다. 시합 전에 내가 이런 말을 했다. '상대가 아무리 강해도 이길 수 있는 게 축구다. 너희들 몸 상태가 80%이지만 최선을 다하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내 몸 상태에서 최선을 다하면 이긴다. 각자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가 동료의 사기를 높일 수 있다.' 내가 기쁘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 선수들이 끝까지 최선의 플레이를 해줬다는 것이다. 돌아서면 철부지고 천방지축이지만 시합에서는 내 뜻대로 해줬다."

―연장전까지 120분이 끝나고, 승부차기 때 "승부에 연연하지 말고 차고 싶은 대로 차라.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고 말했다고 들었다.

"그 자리에 있었다면 다른 감독도 다 그렇게 말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긴박한 순간에는 "실수하지 말고 침착하게 차라"고 말하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결과를 중시하니, 내가 잘못 말했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는 진심으로 '너희가 잘못 차서 져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 아이들은 2002년 월드컵 이후 정말 축구가 좋아서 시작한 애들이다. 당돌하게 '내 인생을 엄마가 결정할 수 없다'며 공을 차겠다는 여자아이도 있었다. 이런 애들에게는 이기는 것보다 축구를 즐기는 것을 먼저 가르치는 게 옳다."

―우리 축구에는 '골 결정력 부족' '문전 처리 미숙'이라는 말이 늘 따라붙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기막힌 중거리슛에다 18골이나 얻었다.

"훈련의 맨 마지막에는 골키퍼와 1:1로 슈팅 시합을 했다. 여기서 골을 넣어야 훈련이 끝났다. 못 넣으면 벌칙이 있었다. 하지만 감독 눈치를 보고 그 상황을 모면하려고 하면 실제 시합에서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아이들에게 '이번 슈팅을 못 넣으면 시합에 진다. 꼭 한 번의 찬스가 올 때 넣자'고 주문했다. 그 마지막 슈팅 연습을 시합처럼 여기게끔 했다."

스페인과의 준결승에서 최감독.

―하지만 골 감각은 상당부분 타고나는 것이 아닐까?

"타고나는 게 많다. 여민지 선수가 그렇다. 이런 선수는 팀의 중심이고 기둥이다. 소위 기계에서 절대 바꿀 수 없는, 이것이 잘못되면 기계 전체를 다 바꿔야 하는 부품과 같다. 이런 스타선수 한두 명이 통상 팀의 운명을 좌우한다."

―특정 선수를 높이 평가할 경우 자칫 팀 전체 화합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가?

"축구는 팀플레이다. 자기 혼자만의 축구를 한다면 그 팀이 되겠는가. 아이들에게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항상 겸손하라'고 말한다. 골을 넣은 것은 자기 혼자서 한 게 아니다. 동료들이 패스를 해주기 때문이다. 여민지나 지소연 선수는 그런 고마움을 표시할 줄 안다. 좋은 선수가 되려면 좋은 인성이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오래가지를 못한다."

―여민지 선수의 경우 무릎 인대를 크게 다쳐 결승 때는 곧잘 쓰러지곤 했다. 향후 어린 선수의 장래를 생각하면 과연 계속 출전을 시킨 게 옳았나?

"여민지 선수는 무릎 부상으로 국내 훈련에서도 참여시키지 않았다. 대신 입원과 재활훈련을 시켰다. 전지훈련 때도 안 데려갔다. 시합을 위해 출국하기 전 '선생님은 대회 성적보다 네 미래가 더 중요하다. 시합에서 너를 안 뛰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순조롭게 회복하면 너는 팀의 기둥이고 중심이기 때문에 서있을 수만 있어도 내보낸다'고 말했다. 캐나다전에서 후반 20분을 남기고 처음 뛰게 했다. 그 뒤 남아공전에서 경기가 안 풀려 여민지를 교체투입시켰다. 들어가자마자 경기가 풀리기 시작했다. 그 뒤로 계속 출전시켰다. 체력을 회복한 뒤 내보내야 했지만 세계대회라서 불가피했다. 준결승과 결승전에서는 무릎 부상보다 체력이 완전히 바닥났다. 그럼에도 여민지를 끝까지 내보낸 것은 팀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또 득점왕과 MVP 등을 앞두고 있어 최후까지 남아있어야 했다. 쓰러지더라도 그때는 교체해줄 생각이 없었다."

―최 감독도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서른 살에 선수생활을 마친 걸로 안다.

"지금 내 무릎 관절 안에는 연골이 전혀 없다. 선수 때는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누구한테도 진다고 생각 안 했다. 기술적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적이라면 유일하게 내 무릎이었다."

―그 무릎 부상은 어떻게 비롯됐나?

"성장 시기에 너무 많은 운동을 했다. 강해진 다리근육이 무릎 관절을 붙들고 있어 키가 자랄 수 없었다. 결국 고교 시절에 관절이 부스러졌다. 깁스를 하고 누운 6개월 동안에 키가 무려 20cm나 자랐다. 그 뒤로는 양쪽 다리뼈가 어긋나게 자라 뼈를 잘라주는 수술을 받았다. 재활훈련을 하고 다시 뛰었다. 그때까지 축구만 해왔고 축구가 내 꿈이었으니까."

―당시 본인이 그만 뛰든가, 아니면 감독이라도 말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성장할 때는 지나친 운동을 시키지 말고 영양섭취를 잘 하고 키가 더 자랄 수 있게 해야 한다. 지금은 그렇게 무식하게 운동을 시키지 않는다. 실업팀에서 뛸 때는 무릎에 물이 차 주사기로 물을 뽑고서 뛰었다. 그러면서 매일 시합에 나갔다. 내가 빠지면 경기가 힘들다는 걸 아니까 계속 뛸 수밖에 없었다. 한번은 무릎 관절의 물을 빼다가, 다음날 출전해야 하는데 감독 허락을 안 받고 깁스하고 나타나 혼난 적도 있었다. 두 시즌을 뛰었으니, 선수로서는 반짝했던 셈이다."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실업팀 선수로 잠깐 뛰고 지도자 수업을 받았다. 그 뒤로 일본 조총련계 고교와 대학, 실업팀에서 14년간 감독을 맡았다. 그는 2005년 귀국했다. 그의 본업은 12세부터 15세까지 어린 대표선수들을 발굴 육성하는 일이다.

"이제 어린 선수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를 내가 공부하지 않으면 선수 시절 때와 똑같은 실수를 범할 것이다. 아이들이 훈련만 많이 한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니다. 그 나이에 맞춰 익혀야 할 지식과 축구 기술, 인성 교육이 있다. 승리만을 위한 임기응변에 밝으면 오래가지 못한다. 사람 사는 것도 그렇지만."

젊어서 불운했고 술 담배도 안 하고 가족과 떨어져 단조롭게 사는 것 같았는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축구를 아이들과 함께 하고 있다"고 답하니 그의 보상 잣대는 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