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1968년 1월 북한 124군부대의 특공대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한다. 이 긴장 상황에서 26세 김정일은 후계자로 부상한다. 2009년 1월 북한군 총참모부 대변인이 군복차림으로 TV에 나와 남북 전면대결태세를 선포한 시점에 26세 김정은은 후계자로 낙점받는다. 2010년 3월 백령도 해역에서 잠복하고 있던 북한 잠수정은 우리 해군의 천안함을 어뢰로 공격하여 격침시킨다. 사건으로부터 6개월 후 김정은은 인민군 대장으로 벼락출세하면서 후계자로 나선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쩌둥의 말이 이처럼 실감 날 수 있을까?

북한의 권력은 원초적 폭력 위에 성립하고 있다. 군에 의존하는 북한 권력 속성상 대남 군사도발은 지속될 것이다. 북한은 후계세습 과정의 중요한 국면마다 군사도발을 통해 남북 군사적 긴장국면을 조성하여 정치적 돌파구로 삼는 경향이 있다. 결국 김정은으로의 3대 세습구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천안함 같은 군사적 도발은 언제든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

서방세계의 교육을 받은 김정은이 후계자로 공식화함에 따라 대남자세와 정책에도 변화가 있지 않을까 기대도 있다. 그러나 어린 그가 아버지의 유산 아니 할아버지의 유산을 버리고 자기만의 색채를 내기에는 너무도 험난하다. 전대미문의 3대 권력세습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가 내세울 가장 큰 자산은 김일성의 핏줄로서 적화통일의 민족해방이라는 신성한 과업을 이어간다는 점이다. 지금 배고프고 어렵지만 남조선을 해방할 때까지 주민들에게 허리띠를 졸라매고 수령을 중심으로 혁명과업을 추진하자는 것이다.

남조선 해방노선은 국민이 지도자를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북한 정권의 정통성 근원이자 북한 주민의 지지와 지원을 동원하는 중요한 메커니즘이다. 남조선 해방노선을 포기하는 순간, 북한 지도자는 다른 나라의 지도자와 마찬가지로 국민에게 좋은 일거리와 먹을거리를 제공하여 정통성을 얻을 수밖에 없다. 김정일·김정은 공동정권이 등장했다고 해서 북한체제의 근본적 변화가 없는 한 한국을 해방 대상으로 보는 시각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물론 한국에 대해 강경일변도는 아닐 것이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접근할 것이다. 북한이 원하는 대규모 지원을 제공할 나라는 현실적으로 볼 때 한국과 중국이다. 북한도 이점을 알고 한·중의 경쟁 관계를 부추긴다.

2006년 1월 김정일은 개혁·개방 의지의 상징적 순례지인 덩샤오핑의 남순(南巡) 강화 코스를 둘러본다. 당장 국내에서는 북한은 중국식 개혁·개방을 택하고 중국의 경제진출로 곧 동북 4성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평가가 줄 이었다. 중국의 신식민지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북한에 대한 지원을 적극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2006년 10월 핵실험 이후 화가 난 중국을 뒤로하고 한국 쪽으로 접근한다.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은 평화체제문제는 3자 혹은 4자로 해야 한다고 하여 사실상 중국을 배제하는 듯한 입장을 취하였다. 북한은 명백히 한·중 간 경쟁관계를 교묘히 활용하여 한·중에 대한 종속을 방지하고 최대한의 지원을 얻으려 해왔다. 최근 이산가족상봉 제의 등 대남 평화공세는 김정일의 두 차례에 걸친 중국 방문 이후 중국을 견제하고 한국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확보하기 위한 북한판 균형정책일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북한 정권의 생존을 위해 남한은 꼭 필요한 존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