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동운 기자 dulana@chosun.com

친아버지를 살해한 뒤 시신을 19개월간 집안 장롱에 숨겨 온 30대가 경찰에 검거됐다. 연합뉴스 9월 27일

중학교를 중퇴한 정모(36)씨는 나이트클럽 웨이터, 용접공 생활을 했지만 돈을 모으지 못했다. 동거녀와 열었던 족발집이 망하면서 사채는 눈덩이처럼 불었고, 월세도 밀리기 시작했다. 지난 8월 30일 오후 5시 30분. 정씨는 부산 사하구 하단동에 있는 어머니 이모(63)씨 집을 찾아갔다. 시장에 가려고 문밖을 나선 어머니와 돈을 '달라, 못 준다' 실랑이를 벌였다. 정씨는 아들이 아닌 강도로 돌변했다. 품에서 길이 20㎝짜리 과도를 꺼내 어머니 이씨의 가슴 앞으로 갖다댔다. 어머니는 집 안에 있는 작은딸에게 "이놈이 칼 들고 설친다. 신고하라"고 소리쳤다. 달아났던 정씨는 창원에 있는 원룸에서 잡혔고 범행을 시인했다. 정씨의 '패륜(悖倫)'은 이게 처음은 아니었다.

부산 강서경찰서 김상원 경위는 "2007년 정씨가 칼로 이씨 팔을 베어서 1년간 교도소에 갔다 왔다"고 말했다. 출소를 한 2008년 10월엔 가족이 사는 동네를 지나다 여동생 정모(33)씨가 라면을 먹고 있는 것을 보고 라면국물을 엎어 화상을 입혔다. 1년 전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가족을 상대로 한 범행은 이뿐이 아니다. 작년 11월엔 누나인 정모(43)씨를 주먹과 발로 때린 뒤 현금 20만원을 갖고 도망쳤고, 아버지에게 과도를 휘두르다 잡혀 집행유예를 받았다. 경찰은 "정씨는 친족(親族)을 대상으로 한 전과만 따져도 3범"이라고 했다.

가해자 연령 점점 낮아져

존속(尊屬·부모 또는 그와 같은 항렬에 있는 사이의 친족)을 상대로 범행을 저지르는 '존속범죄'가 끊이지 않는다. 존속범죄엔 존속폭행·존속폭력·존속상해를 포함해 모든 범죄가 다 포함되지만 존속살인을 제외하고는 얼마나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형민 박사는 "존속살인은 신고가 접수되지만, 폭력이나 상해는 가족들이 서로 쉬쉬하고 넘어가면 알 수 없기 때문에 존속범죄 발생 수 전체를 정확하게 아는 건 힘들다"고 말했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전체 살인사건에서 존속살해가 차지하는 비율이 다소 높다. 경찰청 범죄통계를 보면 존속살해는 최초로 통계가 작성된 1995년 26건으로 시작해 2008년에도 44건이 벌어지는 등 매년 40건 안팎의 사건이 발생했다. 2008년 1월부터 2009년 6월까지 발생한 살해사건은 1734건이었는데 그 중 4.2%(72건)가 존속살해였다. 강원지방경찰청 정성국 박사에 따르면 전체 살인사건에서 존속살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미국이 2%, 영국 1%, 프랑스 2.8%인 반면, 한국은 약 5% 전후다.

이유는 뭘까. 정성국 박사는 "존속살해에서 아들이 어머니를 살해하는 비율을 보면 답이 나온다"고 했다. 2008년 1월부터 2009년 6월 사이 일어난 72건의 존속살해 중 아들이 어머니를 죽인 게 37건으로 50%가 넘었다. 즉, 외국에 비해 부모·자식이 함께하는 시간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양육(養育)을 담당하는 어머니가 가장 쉽게 희생된다는 것이다.

교육열이 높고 자식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부모와 자식 간에 분노가 쌓이며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는 의견도 있다.

존속살해사건의 가해자 연령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정성국 박사는 "가해자의 연령대가 과거엔 주로 30대에 몰려 있었는데 지금은 20~40대까지 다양하다"고 했다. 실제로 2008년 1월~2009년 6월 사이 존속살해 가해자의 연령대는 20대(27.8%), 30대(30.6%), 40대(26.4%)였다. 지난 9월 9일 경기도 포천에선 고교 1학년 학생인 최모(16)군이 "담배 피우는 것을 아버지에게 말하겠다"고 말한 어머니를 칼로 살해했다. 이를 말리던 70대 할아버지도 최군 손에 살해됐다. 행동통제력이 약한 10대의 범죄는 더 잔혹한 경향을 갖는다.

정신분열로 인한 사건 증가해

박형민 박사는 "정신분열로 인한 존속살해의 비중이 점차 높아져 가고 있는 게 추세"라고 했다. 2008년 1월~2009년 6월 사이 벌어진 72건의 존속살인 중 43.1%(31건)가 정신분열이 원인이었다. 박 박사는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사람이 주로 접하는 사람은 가족이고 이들이 유일한 인간관계인데, 이 사이가 틀어지면서 사고가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8월과 10월은 가족 상대 범죄가 늘어나는 달이다. 부산 강서서 김상원 경위는 "추석 같은 명절이나 가족들이 많이 모이는 때, 재산 분쟁이나 묵혀온 앙금이 폭발하면서 폭행이나 살인까지 일어나는 확률이 높아진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존속폭행이나 존속상해 등의 행위가 존속살해보다 더 패륜적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존속살해의 경우 우발적으로 또는 정신이상의 이유로 저지르지만, 폭행이나 상해는 상습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폭행이나 살해에 대해 경중(輕重)을 따질 수 없다'고 한다. 경기대 경찰행정학과 황태정 교수는 "정신이상의 이유로 범행을 저지를 때는 무작정 징역을 살게 하는 것보다 치료를 우선적으로 하게 하는 방향으로 법제도를 바꾸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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