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설과 추석 등 명절 직후에는 부인들의 이혼 상담이 평소보다 늘어난다.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명절을 맞아 대청소를 하고, 차례 준비를 하고, 시어른 등 손님들을 응대하고, 끼니때마다 갖가지 음식 준비에 설거지까지 하다보면 온갖 생각이 다 든다고 한다.
"내가 왜 이러고 있나?"에서부터 시작해서 "내가 이러려고 결혼했나?"라는 생각까지 든다고 한다. 몸 힘든 것이야 좀 쉬면 나아진다고 하지만 이처럼 고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지나가는 말로라도 '당신, 수고했어!'라는 위로의 말 한마디 없는 남편을 볼 때마다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한다.
며칠 동안 하루는 자식들을 봐서 참고, 하루는 주변의 눈을 봐서 참고, 또 하루는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이 아까워서 참아보지만 도저히 더 이상은 못 참을 것 같은 데다 다음 명절 때까지 이렇게 보낼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자 잃어버린 내 인생을 되찾기 위해 용기를 내어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고 한다.
물론 이분들이 달랑 명절 그 며칠을 못 참아서 이렇게 쉽게 이혼 이야기를 꺼내기야 했을까만 어려운 결단을 내리는 데 있어서 명절 동안의 스트레스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 이런 분들과 상담하다 보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무척 고민스럽다. 필자도 남자이다 보니 맞장구를 치면서 남편 욕을 같이 하려니 가슴 저 밑에서부터 울려오는 천둥보다 큰 양심의 소리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고, 그렇다고 남편 하소연을 하러 온 사람에게 그게 아니라고 남편 편을 들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남의 가정사에 섣불리 뛰어들어 이혼하라고 하는 것도 몹쓸 짓인 데다 무조건 참고 살라고 하는 것도 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죽 답답하면 변호사 사무실까지 찾아왔을까만 변호사라고 해서 그들의 청춘을 되돌려줄 수도, 얽힌 실타래처럼 꼬인 인생을 바로잡아 줄 수도 없으니 그저 하소연할 때 들어주고, 원망할 때 끄덕여주고, 눈물 흘릴 때 화장지 들고 기다려 주는 외에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시원하게 한바탕 하고 나면 후련해진다고 하니 위안을 삼을 뿐이다.
문득 얼마 전 읽은 일본의 이혼식에 관한 기사가 떠오른다. 최근 일본에서는 웃지 못할 신풍속이 생겼다고 하는데, 바로 이혼식이라고 한다. 이혼식은 결혼식과 대비되는 행사로 신랑신부가 아닌 '구랑구부(舊郞舊婦)'가 하객들 앞에서 이혼을 하게 된 계기와 재산분할 문제, 양육권 문제 등을 설명하고 이혼을 선언하며 개구리가 그려진 망치로 결혼반지를 깨는 의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러고는 서로 다른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각자의 길로 간다. 하객들 입장에서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고약한 상황이겠지만 '구랑구부'의 입장에서는 어찌되었건 자신들의 삶을 새롭게 그리고 당당하게 출발하기 위한 의식으로서 매우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이혼율도 이제 가히 세계 정상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지 이혼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향도 많이 줄어들었다. 각자가 나름대로의 사연이 다 있을 터이니 이혼 자체를 놓고 옳으니 그르니 할 수는 없기에 이제는 무조건 이혼을 막기보다 과연 이혼하는 것이 현명한 결정인지 여부를 고민하고, 만약에 이혼을 하여야만 한다면 얼마나 현명하게 이혼을 하느냐가 새로운 화두로 부각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결혼이라는 선택을 함에 있어 숱한 날을 고민하듯이 이혼이라는 일생의 선택을 함에 있어서도 역시 많은 고민이 필요하리라. 그리고 어떠한 결정을 하였든 그 결정 앞에 떳떳할 필요가 있다. 나 자신에게 떳떳해지는 것에서 출발하여 내 인생 앞에서도 떳떳해질 필요가 있다. 굳이 이혼식이라는 의식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겠지만 이혼식이라도 하겠다는 마음가짐이라면 멋지게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