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형서(38)씨의 첫 장편 '새벽의 나나'는 태국 방콕의 홍등가인 '수쿰빗 소이 식스틴(16번 골목)'을 세 번에 걸쳐 여행한 한국 남자 레오가 겪은 기이한 경험에 대한 이야기다. 매춘과 마약, 폭력으로 얼룩진 이국(異國)의 거리 풍경과 그곳 사람들의 일상을 4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에 담았다. 주요 등장인물만 해도 10명이 넘는 이 소설은 세밀화를 보는 듯한 극(極)사실적 묘사로 서사의 뼈대를 세우고, 전생(前生)과 환상·기적이라는 초자연적이고 이질적인 요소로 살과 피를 채워 현실과 동등한 무게로 부려놓는 색다른 글쓰기를 전개한다.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는 "이런 작품들은 흔히 리얼리즘 서사를 채택하는데, 이 작가는 지독한 리얼리티만을 부각시키지 않고 오히려 전생이라는 환상적 장치를 교묘하게 더해 이야기의 부력과 역동성을 얻었다"고 평가했다.
소설은 아내의 부정(不貞)을 알게 된 중년의 한국 남자 레오가 15년 전 방콕 소이 식스틴 거리에서 만났던 매춘부·동성애자·성전환자·마약중독자·노름꾼 등 온갖 하류인생들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레오는 대학을 마치고 아프리카 배낭여행을 가던 중 잠시 방콕에 머문다. 전생을 보는 신비한 능력을 가진 레오는 밤거리를 걷다 500년 전 인도 왕국의 공주이자 자신의 아내였던 플로이와 마주친다. 플로이 곁을 떠날 수 없다고 느낀 레오는 소이 식스틴에 머물며 그녀에게 밥과 옷을 사주고 함께 마약까지 하지만 플로이는 그를 멀리한다. 결국 배낭여행 경비를 탕진하고 서울로 돌아와 직장에 취직하지만 교통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긴 것을 구실 삼아 다시 방콕행 비행기를 탄다.
―소설에 따르면, 레오와 플로이의 재회는 전생에서 자신을 위해 사냥을 하다 짐승들에게 물려 죽은 레오를 잊지 못한 플로이가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생에서 플로이는 레오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더라.
"레오는 플로이와 함께 살 수도, 그렇다고 떠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진다. 매춘부인 플로이의 입장에서 보면, 레오는 그녀와 소이 식스틴 사람들에게 이방인일 뿐이고 자신의 전생을 알고 있기에 오히려 더 부담스러운 존재다. 누군가에 대해 알거나 많은 정보를 갖는 것이 진정한 이해와는 다름을 보여주는 상황이다."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는 이 작품에 대해 "방대한 '팩트(fact)'들로 서사적 유기성을 갖춘 소설을 만들어낸 작가의 노력을 주목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을 곁에서 지켜보기도 했고, 소설 쓸 때도 7개월간 태국에 머물렀다. 이런 식이라면 1~2년 사이에 새로운 장편을 쓸 수 없겠다 싶을 만큼 공을 들였다."
―그런 노력으로 우리 이야기를 쓰는 게 낫지 않았을까. 우리 하층민을 다루는 것이 독자의 피부에 더 와 닿았을 수 있다.
"때로는 우리에게 익숙한 상황이나 장소보다 남의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다른 장소와 다른 시간의 삶을 통해 지금 이곳에 사는 우리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다. 소설이란 게 결국 타인의 삶을 이야기라는 거울에 비춤으로써 우리 자신을 이해하려는 시도 아닌가."
―죽은 여자의 영혼이 거리를 활보하고, 인간과 파충류가 대화를 나누는 등 만화 같은 장면들이 아무런 설명이나 장치 없이 그대로 소이 식스틴의 현실세계와 병존하는데.
"나는 이야기의 설득력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냐 여부보다는 그 작품 안에서 완결성을 갖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부패한 경찰이 플로이를 성폭행하는 것을 보며 레오가 괴로워하자 '기억을 훔치는 자'가 등장해 그 기억만을 제거하는 장면이 있다. 기억을 없애는 초능력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소설에 쓴 것처럼 '기억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아프게도 하지만, 어차피 지난 일일 따름'이란 생각을 표현한 것이다."
―'영혼을 모근이라 할 때 생이란 영혼이 꿈꾸는 한 올의 터럭'(206쪽)이며, 현재의 인생은 '윤회의 풍차에서 불어오는 영겁의 바람' 앞에서 '단지 순서가, 오늘 여기서 맡은 배역이 다를 뿐'(340쪽)이란 표현이 있다. 이는 자칫 사회·윤리적 일탈을 인정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
"부인하려 해도 나와 다른 이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 아닌가. 그들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와 다른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
●박형서는…
1972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한양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해 '토끼를 기르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들' '자정의 픽션' 등 두 권의 소설집을 발표했다. '새벽의 나나'는 그의 첫 장편이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웃음으로 포장하는 방식으로 생(生)을 누르는 비극적 긴장감을 표현하는 그는 "이질적인 요소를 결합하는 방식의 글쓰기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소이 식스틴을 취재하는 동안 수상한 짓은 하지 않았는데, 장가갈 때 오해받을까 봐 은근히 신경 쓰인다"는 총각 소설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