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중학교 3학년이다. 이렇게 큰 딸이 있다는 사실에 가끔 이건 여름방학 때 늘어지게 자며 꾸고 있는 꿈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학교에서 오자마자 다시 학원으로 향하며 힘들다고 툴툴거리는 딸의 목소리에 이내 현실이란 걸 깨닫는다.
딸을 키우면서 모토는 '친구 같은 엄마'였다. 그러나 '친구 같은 엄마'란 '딸 같은 며느리'와 비슷한 거짓말이다. 아무리 아이가 좋아하는 가수를 좋아하고, 10대들이 쓰는 신조어를 배워도 엄마는 엄마일 뿐이다. 어째서 방학이 한 달밖에 안 되는데 파마를 하려는지, 어째서 눈에 나쁘다는 서클렌즈를 끼려는지, 어째서 쪄죽을 것 같은 날씨에 하복 속에 또 티셔츠를 껴입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 "학생답게 좀!"을 입에 달고 사는 잔소리 대마왕이 됐다.
이쯤에서 딸과 나의 세대 차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중학생 때는 고교야구 전성기였다. 딸이 중학생인 올해는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들썩였다. 봉황기 결승전이 아직도 내 가슴에 남아 있듯 딸에게는 아마도 그리스전의 희열이 오래오래 가슴에 남을 것이다. 나는 조용필에 열광했고, 딸은 지드래곤에 빠져 있다. 나는 컬러 텔레비전을 보고 그토록 신기해했는데, 지금은 손안에서 아이폰을 조물거리는 세상이다.
아날로그시대에 소녀 시절을 보낸 내가 디지털시대에 사는 딸의 '친구 같은 엄마'가 되겠다는 건 애초에 무리였는지 모른다. "엄마가 너만할 때는 책을 끼고 살았는데 너는 인터넷만 끼고 살지!" 참다못해 한마디 내뱉었다간 집안 분위기가 싸늘해지기 일쑤다. 앞으로는 그냥 밥이나 잘 해주는 엄마가 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