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식 베이징 특파원

"여러분, 요즘 온통 글로벌화라는 말을 쓰는데, 이런 의견이 있습니다. '글로벌화로 가장 이익을 본 나라는 미국이다'. 정말 그렇습니까?" 노 외교관의 이 말에 청중석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젊은 학생들의 머릿속에는 복잡한 생각이 오가는 듯했다.

"최대 수혜자는 중국입니다." 그는 단호하게 말을 이어갔다. "글로벌화가 없었으면 중국이 이렇게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중국은 2001년 어렵게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어요. 그 이후 2002년부터 2007년까지 대외교역량이 매년 27~28%씩 늘었습니다. 역사상 유례가 없었지요. 당시에 WTO가 불공평한 곳이다, 외국 기업이 중국 시장을 싹쓸이할 것이라며 반대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WTO가 그렇게 불공평한 기구라면 중국이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겠습니까? WTO는 비교적 공정하고, 규칙에 따라 움직입니다…."

지난달 2일 산둥(山東) 위성TV가 주최한 한 대중 강연에 나온 우젠민(吳建民·71) 전 중국 외교학원 원장은 작심한 표정이었다. 그즈음 중국은 천안함 피격에 따른 한·미 양국의 서해 합동훈련 계획, 남중국해를 둘러싼 미국과의 갈등 등으로 민족주의가 한껏 고조된 상황이었다. 군부 강경파 이론가들은 미국에 '일전불사'를 외쳤고, 중국 군함이 첨단 미사일을 발사하는 장면이 사흘이 멀다 하고 TV 화면을 장식했다. 관영 언론은 미국과 합동훈련에 나선 한국과 베트남에 "어디 망령되게…" "후회할 것"이라는 식의 막말을 쏟아냈다. 비록 지방TV가 마련한 자리이지만 그의 발언은 이런 분위기를 거스르는 위태로운 내용 일색이었다. 그럼에도 조금도 위축된 모습이 아니었다.

"지난 세기는 혁명과 전쟁의 시대였지만 지금은 평화와 발전의 시대입니다. 황해(서해)와 남중국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대화로 풀어나가야 합니다." 그는 "오늘 대화로 안 되면 내일이 있고, 내일이 안 되면 모레도 있다"고 말했다. 상무(尙武) 정신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군부에 대해서는 "우리와 다르다고 버럭 화를 내고 무력시위를 하는 것은 지난 100년간 약국(弱國)으로 지내오며 형성된 심리 상태"라면서 "주변국의 중국 위협론만 고조시켜 결국 중국에 손해를 끼치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우 전 원장은 1959년 마오쩌둥·저우언라이의 통역으로 외교부에 들어간 베테랑 외교관이다. 2003년 은퇴할 때까지 외교부 대변인, 주제네바 대사, 주프랑스 대사 등 요직을 지냈다.

그는 지난 몇년 사이 중국 내 급진 좌파의 공적(公敵)이 됐다. 지난해 '중국은 불쾌하다(中國不高興)'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로 중국 내 민족주의가 고조됐을 당시, 그는 "도광양회(韜光養晦·재능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린다는 뜻)는 앞으로 100년은 더 가야 한다"는 말로 찬물을 끼얹었다. 그의 이날 TV 강연도 한·미 서해 연합훈련을 계기로 들끓는 중국 내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한 계기가 됐다. 지금은 중국 관영 언론에서 "너무 과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상황이 급반전했다.

우 전 원장은 이날 강연 후반부에서 "대국(大國) 국민이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는 시야를 세계로 넓혀 애국주의와 국제주의를 결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시장을 무대로 살아가는 우리도 새겨들을 만한 대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