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자연풍경뿐만 아니라 멋지고 쾌적한 숙박시설도 여행 목적지로 인정받는 시대이다.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의 바닷가에 들어선 한 펜션이 그런 목적지로 떠오르고 있다.

3동으로 구성된 4층짜리 펜션 건물은 온통 흰색이고 발코니 난간과 창문 틀만 파란색이다. 넓은 정원의 호리병 형태 수영장 주변도 그리스 신전 기둥 모형물로 장식돼 이국적 풍경의 신비감을 더한다. 펜션 건물 각 동의 명칭은 '이아', '이메로', '피라'. 산토리니의 마을 이름을 그대로 따왔다.

파란 돔형의 지붕만 없을 뿐, 여행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산토리니의 분위기를 쏙 빼닮은 건축미에 빨려들고 만다. 20개의 객실은 하나같이 바다를 향하고 있다. 황혼 무렵 발코니로 나가서 바다를 금빛으로, 진홍빛으로 물들였다가 제부도 뒤로 몸을 숨기는 낙조를 감상하면 여행객들은 숨이 턱 막혀 말문을 잃는다. 이국적인 산토리니풍 건축물에서 느껴보는 우리 땅의 아름다움, 참으로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진천 해피하우스의 버섯집.

"모든 여행자가 동경한다는 산토리니, 가봤죠. 이 펜션을 짓기 위한 영감을 얻기 위해서요. 작년 가을 9박10일 일정으로 매형과 함께 두바이, 아테네를 거쳐서 산토리니를 찾아갔습니다."

산토리니펜션지기 배진호(50)씨는 가을이 왔음에도 투숙객들이 여전히 물놀이를 즐기는 수영장 옆 테이블에 앉아서 건물을 짓기까지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산토리니에 가서 그가 한 일은 관광이 아니라 숙박 체험이었다. 마티즈를 렌트해서 이아, 이메로비글리, 피라 마을을 고루 찾아다니며 상·중·하급 호텔에서 하루씩 잠을 자봤다. 60만원짜리 호텔 외에 개인 수영장이 딸리고 아침식사가 제공되는, 일일 숙박료가 3백만원이나 되는 호텔에서도 잠을 잤음은 물론이다. 애초 그는 '인터넷으로 자료 검색하면 됐지, 굳이 산토리니까지 갈 필요가 있느냐'고 생각했다. 산토리니에 도착해서도 첫인상은 '별로 감흥을 주지 못하는 곳'이었다.

"세계적인 휴양지라고 해서 기대감이 컸는데 막상 가보니 우리나라 1960∼70년대 시골마을 같았습니다."

하룻밤 자고 나서 그는 발코니로 나와 지중해의 푸른 물결과 절벽에 다닥다닥 붙은 집들을 본 뒤 비로소 이마를 쳤다. '자연과 건축물의 조화가 산토리니 미학의 핵심'이라는 깨우침을 얻었다. 인공적인 기교를 부리지 않은 건축 양식, 한 마을 전체를 감싸고 있는 통일성, 하얀색과 파란색의 조화. 그는 돌아와서 산토리니 미스틱호텔을 모델로 삼아 설계를 시작했다.

산토리니펜션지기인 배진호씨가 황혼 무렵 수영장 주변으로 나와 가을 바람을 즐기고 있다.

건축공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건축사도 아닌 배진호씨. 그는 어떻게 해서 펜션건축의 전문가가 되었을까? 사실 그는 화성의 산토리니펜션을 짓기 전 이미 여러 채의 독특한 외관으로 시선을 끄는 팬션을 설계하고 지어본 사람이다.

1998년 인터넷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웹사이트 제작, 관리 사업을 벌였고 돈을 좀 벌었다. 전원주택을 짓고 살겠다는 꿈을 실현시키겠다고, 시화호 덕분에 섬의 운명에서 벗어난 어섬에 사둔 땅에 목조주택을 지었다. 배진호의 펜션사업은 여기서 시작됐다. 그것이 2002년의 일. 그해 여름 직전 강원도에 엄청난 수해가 일어나자 피서객들은 모두들 서해안으로 모여들었고 그 덕에 펜션은 7, 8월 내내 빈방이 없을 정도였다.

용기를 얻은 그는 2003년 목조주택 아래에 버섯집을 더 지었다. 전형적인 디자인 대신 특이한 형태의 집을 짓고 싶어했던 차에 마트에서 표고버섯을 보고 힌트를 얻었다. 잘 생긴 표고버섯 3개를 사와 스케치를 시작했다. 마침내 버섯집이 모습을 드러내자 방송을 타는 행운을 누렸다.

그는 2004년 매형 정태기씨의 요청에 따라 충북 진천군에도 버섯집을 지어줬다. 2006년에는 어섬의 목조펜션 옆에 고깔 모양의 집을 더 지었다. 고깔집 아이디어는 TV의 만화영화에서 찾아냈다. 집 짓기 행진은 계속돼 2007년에는 진천 버섯집 옆에 고깔집이 또 추가됐다.

사실 배진호씨의 그림 그리기와 만들기 실력은 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시 종로구 종로5가에서 태어난 그는 효제초등학교 시절 미술실기대회 상은 다 휩쓸었고 5학년 때에는 합판으로 자동차, 로봇, 탱크를 만들었다. 보성중학교에 진학해서는 염소산칼리, 유황, 숯을 배합해서 하늘로 치솟는 로켓을 만들기도 했다. 대학교 때 조선공학과를 들어가서도 기행은 멈추질 않아 요트부 선배들이 여러 해 방치한 요트를 불과 2주일 만에 완성시켜 교수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대학 졸업 후에는 한강의 광나루에서 요트 코치 생활을 했고 패러글라이더 설계와 제조도 경험했다.

승승장구하던 중에 호사다마. 2007년 사기를 당해 어섬에 지었던 목조주택, 버섯집, 고깔집이 배진호씨의 손을 떠났다. 자신이 지은 집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해서 주색잡기 근처에는 얼씬도 않고 소처럼 우직하게 살았던 남자 배진호. 다시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잡고 벌인 것이 또 펜션 짓기였다. 2008년 어섬에 꼬메뜨 펜션을 지었다. 1층에는 화장실, 주방시설, 식탁을 들여놓고 2층에는 침실과 욕실을 들였다. 독특하게도 욕실 창문만큼은 삐딱하게 달았다. 평범한 주택을 옆으로 휘어지게 만든 집이라 투숙객들은 '춤추는 집'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이 역시 히트를 친 펜션 대열에 올라섰다.

여러 채의 펜션을 지어본 그는 '여행객들이 여행을 왔다가 잠을 자기 위해 찾는 숙소'가 아닌, '숙박시설 자체가 여행 목적지가 되는 집'을 짓고 싶어했다. '나를 감동시키는 펜션'을 지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매형이 산토리니라는 곳의 풍광이 아주 마음에 드니 자네도 가보면 반할 것이라고 권유했던 것이다.

배진호씨는 산토리니펜션을 지을 때 모든 방의 구조가 다르게, 저마다 발코니를 갖거나 바다가 보이게끔 설계했다. 침구류는 비싼 것 대신 세탁하기 좋은 것으로 했다. 위생과 청결 관리가 펜션의 생명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수영장도 조립식으로 설치할까 하다가 고객들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제대로 지었다.

투숙객들은 해가 지면 수영장 주변 정원으로 나와 바비큐를 즐기며 살곶이 해변의 낭만에 젖는다. 펜션건축 전문가이자 산토리니펜션지기인 배진호씨는 젊은 그들의 웃음소리에 취하며 내일 또 무얼 만들까 하는 고민에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