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경기도 안양시 백영고등학교 한 교실에서 국어 교사 김태현(34)씨가 고려가요 '가시리'를 가르치면서 가수 빅마마가 부른 대중가요 '체념'을 함께 설명하고 있었다. 김 교사는 학생들이 이별의 아픔을 정서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려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가요를 '교재'로 선택한 것이다. 김씨는 "아이들이 이별의 감정에 공감하면서 '가시리'를 효과적으로 배우게 하려 했다"며 "학생들도 감정 이입(移入)이 돼서 수업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의 김성천(37) 부소장은 학력 수준이 낮아 거의 '무너져가던' 한 중학교를 살리는 작업에 참여한 적이 있다. 김 부소장은 "교사들이 미술 같은 예술 분야를 접목한 교육을 하게 하고, 학생들이 협동해 과제를 하도록 했다"며 "학생들의 수업 흥미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김 부소장과 다른 방법으로 '재미있는 수업'을 위해 노력한 교사들도 있다. 한 교사는 학생들이 친숙하게 느끼는 매체인 동영상을 학생들과 같이 만들어 보기도 했다. 국어 시간에 기행문(紀行文)을 가르치던 어느 교사는 학생이 집에서 학교 가는 동안을 여행한다고 생각하고 글을 쓰게 하는 체험형 교육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교육 전문가들은 학교에서 학생들의 잠을 깨우는 것은 "선생님 하기에 달렸다"고 말한다. 교사들이 수업에 대한 철학을 갖고 주입식이 아닌 참여형 수업을 하면 학생들은 눈을 반짝이며 수업을 듣는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학생들이 교사의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교사를 신뢰하고 존경하는 효과도 있다고 설명한다.
흥미로운 수업으로 학생들의 학습태도를 적극적으로 만드는 것은 선진국에선 이미 일상이 됐다. 지난해 초등학교 4학년 아들과 함께 스웨덴 연수를 다녀온 회사원 김모(40)씨는 "한국에서는 말이 없던 아이가 스웨덴에서는 즐겁게 수업하는 선생님 덕분에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한국에서는 발표도 전혀 안 하는 소극적인 아이였는데 스웨덴에서는 영어 발표도 척척 잘하더라"며 "스웨덴 교사가 '발표를 아주 잘한다'고 아이를 칭찬하며 재밌게 수업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또 "스웨덴의 중학교 영어 수업도 참관한 적이 있는데 초등학교처럼 퀴즈, 편지 낭독, 팝송 부르기로 흥미를 유발해 한 반 20~25명 아이 중 자는 아이가 하나도 없었다"며 "스웨덴에선 아이들을 살리는 교육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고려대 교육학과 권대봉(58) 교수는 "한국도 이제 지식을 '주입하는 교육'이 아니라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교육'을 해야 잠자는 아이들을 깨울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학교 교사들이 교과서만 줄줄 읽어내려가는 천편일률적인 교육 방식을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 전문가들은 '잠자는 학교'가 제대로 깨어나려면 교사들이 재미있는 수업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물론 한국의 교육행정 또한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이경자(54) 대표는 한국 공교육이 '잠자는 학교'로 전락한 원인으로 평준화를 꼽았다.
이 대표는 "평준화 체제에서는 교육 서비스의 고객인 학생이 서비스 제공자인 학교와 교사에게 매년 저절로 공급된다"며 "이는 곧 교사들이 수업을 열심히 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평준화 시행과 더불어 정부가 모든 학교의 교육과정을 획일화하고 통제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며 "학생들의 다양한 욕구가 반영되는 학교 교육이 실종됐고 학교마다 간직했던 특유의 전통과 학풍도 사라졌다"고 했다. 이 대표는 "평준화가 전국 어느 학교든 똑같은 교육을 받으라고 강요하면서 줄 세우기 입시체제가 만들어졌고 살아 있던 학교도 다 죽었다"며 아쉬워했다.
학생들은 '본능적으로' 학교에 통제가 아닌 자율과 다양성이 도입되기를 원하고 있었다. 경기도 A고등학교 3학년 최모(18)군은 "3년 동안 수업구성, 학기운영 등이 똑같았다"며 "교장 선생님에게 자율적인 운영권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군은 "학교 선생님들은 수업을 조금 자유롭게 하고 싶어도 규정이 있어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며 "학교에 자유를 주면 지금처럼 입시제도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문제점도 해결될 것이라 본다"고 했다.
서울 B중학교 2학년 곽모(15)군은 "대학교처럼 내가 원하는 과목을 골라서 수업을 듣고 싶다"며 "국·영·수 중심이 아니라 모든 과목이 중심이 되는 교육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체육교사가 꿈이라는 곽군은 "학교는 장래에 내가 하고 싶은 직업을 가져야 행복하다고 가르치지만, 결국 국어·영어·수학만 강조한다"며 "변호사, 의사만 강요하는 학교가 너무 싫다"고 말했다. 요리사가 꿈인 서울 C중학교 3학년 김모(16)군도 "요리전문 고등학교에 가고 싶은데 모든 전문학교가 높은 성적을 요구한다"며 "연기나 음악, 요리를 잘해도 국어·영어·수학을 못하면 하고 싶은 일을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중앙대 교육학과 이성호(53) 교수는 "교육 현장의 핵심인 교사를 지금보다 늘리면, 교권도 살리고 공교육이 싫어 학원으로 가는 학생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다만 경쟁력 있는 공교육을 위해 임용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평가를 받고 능력을 인정받으면 정년을 보장하는 제도도 도입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