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영화과에 입학해 처음 촬영 스태프로 참여한 영화를 부모님께 보여드리려고 극장에 갔던 일이 기억난다. 영화쟁이 아들을 마뜩찮게 보시던 아버지께 내 이름 석자를 떳떳하게 보여드리고 싶었다. 내심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엔딩 크레디트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상영이 중단되고 불이 켜지면서 청소가 시작됐다. 작은 글씨로나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을 내 이름을 볼 수 없어 황당했던 생각이 지금도 새롭다. 부모님은 그날 이후 여러 극장을 다니시며 내 이름을 찾아보셨지만, 어떤 극장도 엔딩 크레디트를 끝까지 상영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내가 영화관을 운영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정한 운영원칙은 엔딩 크레디트가 모두 올라갈 때까지 불을 켜지 않는 것이었다. 엔딩 크레디트는 영화 스태프에 몇 달간의 노력을 보상받는 짧지만 의미 있는 순간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하루는 극장 로비에서 한 관객이 "책임자 나오라"고 소란을 피웠다. 그 사람은 나를 보자마자 따귀를 때렸다. 그리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왜 불을 켜지 않았느냐. 내 아이가 어두운 계단을 걷다가 넘어져 크게 다칠 뻔했다"고 소리쳤다. 내가 관객들에게 엔딩 크레디트 보기를 강요했던 것 같아 그후 타협점을 찾았다.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는 사고를 방지할 수 있을 정도의 미등을 켰다.
티켓을 구입한 순간부터 극장을 나서는 순간까지 영화관의 주인은 바로 관객들이다. 영화 한 편을 위해 수개월 혹은 수년간 땀 흘린 사람들의 이름이 상영되는 순간 역시 영화관의 주인은 바로 관객들이다. 내가 주인인 공간에서 나를 위해 땀 흘린 이들에게 작은 관심을 표해주는 것 역시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9월 '일사일언'은 정상진씨를 비롯해 번역가 권남희씨, 시인 조은씨, 홍의택 경원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가 번갈아 집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