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무효, 행정수도 위헌(違憲), 야간집회 헌법불합치와 최근의 사형제 합헌 결정까지….

헌법재판소는 우리 사회를 뒤흔든 초대형 이슈들과 논란의 한가운데 서 있다. 갈수록 극심해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이념대립과 갈등의 중재자로서, 때론 최종 심판자로서 역할해 온 헌재를 이끄는 이강국 헌재소장이 처음으로 언론 앞에 나섰다. "언론과 인터뷰를 한 전례가 없다"며 고사(固辭)한 끝에 헌재 창립 22주년을 맞아 어렵사리 내린 결정이다.

이강국 헌법재판소 소장이 헌재 창립 22주년을 앞두고 지난달 30일 조선일보와 단독인터뷰를 가졌다. 이 소장은“정치문제가 매번 헌법적 판단을 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근본적으로 우리 국회와 정당의 정치문제 해결 능력이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의 司法化?

정치문제가 생길 때마다 헌법적 판단받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

이 소장은 인터뷰에서 보수·진보의 극단적인 대립에 대한 우려, 정치문제의 사법심사와 개헌 문제에 대한 소회, 법관들의 튀는 판결에 대한 입장 등을 특유의 조용하고 논리적인 화법(話法)으로 풀어나갔다. 헌재를 둘러싼 오해와 궁금증에 대해 설명하고, 재판관 9명만이 참여해 헌재 결론을 도출하는 신비주의 영역인 평의(評議)의 '속살'도 살짝 드러내 보였다.

―헌재가 창립 22주년을 맞게 됐습니다. 헌법과 헌재의 역할,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글쎄 긴장이 좀 됩니다. 평생 법률용어만을 써와서 어떻게 쉽게 설명 드려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웃음)

헌법을 쉽게 정의한다면 국민을 행복하게 하기 위한 국가의 최고법이자 근본규범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헌재 창립 이전에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헌법규정들이 권위주의체제를 정당화하는 장식(裝飾)이거나 명목에 불과한 측면이 있었지만, 이제는 명실상부하게 국민의 생활 속에 살아숨쉬는 생활규범이 됐습니다.

헌법재판은 본질적으로 사법작용이지만 헌법 자체가 고도의 정치성과 개방성을 띠고 있기에 전통적 사법작용과는 다르고 정치적 재판의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헌법의 이념과 가치를 수호하고 그 시대의 시대정신과 다양한 의견을 반영해 국가와 사회공동체의 동화적(同化的) 통합을 이뤄내야 하는 것이 헌법재판의 목적이고 요체(要諦)이지요."

―소장께선 판사 시절부터 헌법재판의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았고, 1988년 헌법재판소법 제정 작업에도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 조사결과를 보면 헌재가 국가기관 가운데 신뢰도 1위를 줄곧 차지하고 있는데, 이유가 무엇일까요.

"1977년 독일에 장기연수를 갔을 때 독일연방 헌재가 확립해놓은 '헌법합치적 법률해석'이라는 법리를 연구했어요. 그때 헌법소원과 독일이론에 대해 연구한 경험 때문에 헌법재판소법 제정 때 참여를 했습니다. 헌법소원이 뭔지 잘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 때인데, 그 당시엔 '독일의 예에 비춰보면 우리도 헌재가 잘 정착하면 언젠가 상당한 영향력을 갖게 되겠구나' 하는 막연한 생각만 가졌지, 지금처럼 빠른 시간 내에 사회적 영향력이 큰 국가기관이 되리라곤 저 자신도 예상을 못 했습니다. 조규광 초대 헌재소장님을 비롯한 헌재 1기 재판부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헌법해석을 통해 헌재가 조기 정착하는 데 크게 기여하셨습니다. 이후로도 헌재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유지했고 정치적 중립성을 견지하면서 침해되거나 제한됐던 인권과 자유를 신장시키는 데 많은 노력을 한 것이 국민의 높은 평가를 받게 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정치권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국회나 정치권이 스스로 해결할 일을 헌재로 들고 오는 일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국회의결 절차가 문제됐던 미디어법이 대표적인데요, 정치의 사법화 경향을 어떻게 보십니까.

"이른바 정치의 사법화라는 것은 정치문제의 헌법적 통제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해서 일면 법치주의의 실현이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선거구 불평등 획정 문제를 보면 미국에서도 처음에는 정치의 영역이라고 해서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삼지 않다가, 1963년에 미 연방대법원이 '베이커 대 카' 사건에서 평등권 문제를 지적한 이후 사법심사 영역이 됐죠. 하지만 정치라는 것이 창조적이고 능동적으로 갈등을 조정하고 광범위한 정책 형성 기능을 갖는 것인데 사법의 개입이 잦아지면 정치문제에서 합(合)목적성을 담보하기 어렵게 됩니다. 여러 이론이 나오고 있습니다만 제가 볼 때 근본적으로는 우리 국회와 정당이 정치문제에 대한 해결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권이 헌재의 위헌 결정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거나,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의해 내려진 결정이라며 비판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국민의 직접 선거에 의해 선출된 의원들로 구성된 의회에서 다수결로 결정한 법률이나 정책이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 않은 헌재에 의해 위헌으로 무효가 되는 것은 민주적 정당성에 반한다는 논리이지요. 하지만 헌법은 한편으로는 의회에 광범위한 입법권을 부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헌재에 이를 헌법적으로 통제하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헌법재판에는 입법자(국회)와의 긴장과 대립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지요. 헌법재판에서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다시 개헌이 거론 되는데…

논의가 너무 권력구조에 집중 국민 기본권 등 잘 다듬어 기왕이면 '아름다운 헌법' 됐으면

―최근 헌재 결정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위헌'이나 '합헌'처럼 딱 부러지는 게 아니라 헌법불합치, 한정위헌 같은 변형결정이 늘어나면서 나오는 얘기인데요.

"저도 듣고 있습니다. 헌재가 일부러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좌고우면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고요. 비판은 대개 세 가지 정도 같습니다.

첫째는 '단순위헌 하면 될 것을 왜 헌법불합치 한정위헌 같은 난해한 용어를 동원하느냐'이고, 둘째는 '합헌이 4명, 위헌이 5명인데 왜 합헌이냐'는 것, 또 셋째는 '결정문이 보충의견 별개의견 등으로 복잡하게 씌어지는데 도대체 입장이 뭔지 헷갈린다'는 것이죠. 우선 헌법불합치나 한정위헌 같은 변형결정은 독일뿐 아니라 유럽 여러 나라에서 40년 전부터 널리 활용하는 제도예요. 위헌결정으로 인한 사회적 파장과 법적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고민에서 나온 법리입니다.

위헌 선언의 정족수 문제는 우리 헌법 제113조 1항에 규정돼 있어요.

법률은 본래 강한 민주적 정당성을 가진 국회에서 채택한 것인데 그렇다면 법률은 일단 헌법에 합치(合致)한다고 추정해야 한다는 원칙(소위 법률의 합헌성 추정원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걸 깨려면 재판관(9인) 다수결로는 부족하고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또한 헌재의 결정은 법원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을 기속(羈束)하는 것이기 때문에 명확해야지, 재판관들의 의견이 너무 여럿으로 갈리게 되면 헌법재판의 기능을 왜곡할 수 있습니다. 헌재 입장에선 기속력의 의미와 범위 등을 분명히 밝히기 위해 의견을 크게 집약하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헌재 재판관을 대통령·대법원·국회가 3명씩 추천하는 구조이다 보니, "추천권자의 이해를 반영한다"는 지적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또 현재 전부 법조인으로 돼 있는 헌재 재판관의 구성을 더 다양화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지적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재판관들은 오랜 시간 법조인으로 일하면서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에 관한 훈련도 많이 받은 분들입니다. 임명되고 나서부터는 자신을 추천하거나 지명해준 기관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국민이 염려하시지 않아도 된다고 100%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재판관 구성은 헌법이 사회통합을 실현하고 촉진하기 위한 가치질서라는 측면에서 다양한 가치와 시각과 경험을 가진 전문가들도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국민이 직접 선출해서 민주적 정당성이 가장 높은 대통령과 국회로부터 인선에 대한 관여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정치적 재판으로서의 헌법재판에 관한 민주적 정당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재판관들의 일상은…

평의 끝나면 모두 '파김치' 9명 재판관 인근 식당 모여 막걸리 한잔 하며 앙금 풀어

―재판관들의 일상과 평의가 궁금합니다. 평의 과정과 내용은 비공개이지만, 간단히 소개해주신다면.

"재판관 9명의 가장 중요한 업무가 평의입니다. 매달 첫째, 셋째 목요일 오전 10시에 시작해서 저녁 7~8시까지 마라톤 회의를 하지요. 한 사건씩 평의가 진행되는데 재판관 한 사람이 의견을 개진하면, 다른 재판관이 문제점을 지적하고 또 반박하고 하면서 치열한 공방이 이뤄집니다.

자료 전쟁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재판관들이 이만큼씩(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면서) 자료를 가져와서 배포하고 의견을 개진하는데, 그래도 문제점이 해소되지 않으면 다음번 평의 기일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평의가 끝나고 나면 모두가 한마디로 '파김치'가 됩니다. 구체적 사건에 대해 법리적 논쟁을 하는 것이 얼마나 신경쓰이고 피곤한 일입니까. 평의가 끝나면 재판관 9명이 모두 모여서 인근의 식당에서 막걸리도 한잔하면서 피로를 풉니다. 특히 공격하고 방어하다 보면 때로는 서로 서운한 감정을 가질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럴 때는 막걸리 잔을 서로 권하면서 '오해하지 마세요,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하면서 풉니다. "

―우리 사회의 이념적 분열과 대립양상이 위험수위에 도달해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청와대에 '사회통합수석'이 생길 정도인데요. 해소하거나 완화할 수 있는 길이 있을까요.

"어느 사회나 이념적 대립과 갈등은 있어왔습니다. 자유와 평등, 성장과 분배, 국가와 시장 등과 같은 대립은 크든 작든 간에 있었고 그런 대립이 인류역사의 발전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의 이념대립은 그 도(度)가 지나쳐서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불안감을 줄 정도가 됐습니다. 이념 갈등으로 인한 비용이 우리 GDP(국내총생산)의 27%라는 어느 경제연구소의 조사결과까지 있지 않습니까.

제 생각에는 우리 사회의 이념대립에서도 그 양극단에 있는 이른바 '탐욕적 보수'와 '종북적(從北的)' 진보를 논외로 한다면, 보편적 의미에서의 보수와 진보는 국민의 마음을 잡기 위해 서로 경쟁하면서 보완적, 대안적 관계가 되어야 하는 것이지 다른 한쪽을 타도하거나 부정하려고 사생결단식으로 싸워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보수는 합리적이고 변화를 적극 추구하는 건강한 보수로, 진보는 역사와 전통 앞에 겸손하고 책임 있는 진보로 각각 진화하면서 소통하고 공존해야 합니다. 사상가 칼 포퍼는 '이념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열린 사회의 최대의 적(敵)'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국민관심이 높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정치권에서 다시 개헌 문제를 거론하고 있습니다.

"헌재 차원에서 입장을 말씀드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을 말씀드린다면, 헌법개정 논의가 너무 정부형태나 권력구조 문제에 집중돼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헌법개정은 역사적·국가적 대사이고 자주 할 수도 없는 것이기에 공론화 과정을 거쳐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어내야 하고, 그 기초 위에서 헌법전문과 총강, 국민의 권리와 의무와 관련한 부분도 잘 다듬어서 개헌해야 합니다. 그래야 미래지향적이고 강한 규범력을 지니며 오랜 생명력을 갖는 헌법이 됩니다. 또 헌법이 개정된다면 '아름다운 헌법'이 되었으면 합니다. 국민의 지혜와 노력을 결집해 강력한 체계 정당성을 가지면서도 아름다운 문장과 아름다운 표현으로 세계에 내놓고 자랑할 수 있는 모범적이고 선진적인 헌법 말입니다."

'튀는 판결' '막말 판사'에 대해선…

소신과 양심만을 내세워 이념적으로 튀는 판결하는 건 국민을 실험대상으로 삼는 것

―최근 법원에서 일부 판사들의 '튀는 판결'과 '막말'이 문제가 되면서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이른바 튀는 판결을 하는 법관들이 소신과 양심에 따라 판결했다고 주장하는 경우를 봤습니다.

헌법 제103조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재판한다'고 규정한 것을 오해한 것인데요.

'인간으로서의 개인적 양심'은 헌법 제19조가 따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헌법 제103조의 양심은 법관으로서의 직업적 양심을 의미라는 것으로 정치적 독립과 중립성을 유지하면서 구체적 타당성이 있는 공정한 재판을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소신과 양심만을 내세워 이념적으로 튀는 판결을 하는 것은 국민을 이념적 편향성의 실험대상으로 삼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 막말 문제는 법관들에 대해 끊임없이 교육하고 훈련시켜서 가르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근본적으로는 법관들은 재판을 받는 당사자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즉, 재판권은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법관들이 대신 행사하는 것에 지나지 않고 헌법이 법관에게 보장한 재판의 독립과 신분보장 등은 법관 자신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재판받는 국민을 위한 것이라는 인식을 확고히 해야 합니다. 결국 재판은 국민을 위한 헌법적 제도라는 인식이 확실하게 자리잡아야 합니다."

―헌법재판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굳이 재판을 받을 필요가 없는 사건들도 몰려오면서 헌재업무가 폭증추세인데요.

"대법원 일이 많은 것이야 누구나 다 아는 일인데, 저도 대법관을 하다가 헌재에 와보니까, '헌재 일도 상당한 격무로구나' 하고 느끼고 있습니다. 코피를 쏟거나 안질(眼疾)에 시달리는 재판관, 병원 신세를 지는 재판관들도 있어요.

요새는 참 많은 분이 헌재로 와서 심판을 받아보고 싶어하는데, 가끔 참 재미있는 사건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십원짜리 동전에 왜 불교 문화재인 다보탑이 새겨져 있느냐, 이건 종교 간 평등과 정교(政敎) 분리에 위배하는 것 아니냐'는 어느 목사님의 청구도 있었고, 초·중학교에서 지방방언(사투리) 보전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이 위헌이라고 주장한 사건도 있었어요. 그런 사건들을 볼 때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의 다양성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헌재가 나갈 길과 추진하는 계획 등을 소개해 주십시오.

"올 11월에 '헌법재판연구원'이 출범합니다. 헌법재판의 중·장기적 과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기관입니다. 그동안 우리 헌재는 대륙법계인 독일을 모델로 했고 미국식 헌법이론과 판례도 많이 차용해서 재판에 활용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 헌재의 정체성을 한번 검토할 시점이 되었습니다. 독일과 미국을 따라만 가면서 답습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어서 우리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법체계에 맞는 '제3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와 비슷한 입장의 아시아 각국 등에 우리가 발전시킨 법리를 수출할 기회도 생길 것입니다. 또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헌법해석을 위해서 국민과의 소통도 강화할 것입니다. 이미 2년 전부터 매월 1회 이상 공개변론을 열어 대학교수, 전문가 그룹의 의견을 듣고 있습니다. 법률관련 연구회, 학회, 동호회 등을 통해 비판과 고언에도 더욱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

◆이강국 소장은

이강국 헌재 소장은 신중한 성격의 원칙주의자다. 판사 시절 판결문 한 구절 한 구절을 놓고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탓에 그의 배석판사들이 볼멘소리를 낼 정도였다. 하지만 재판을 받는 당사자들은 그만큼 승복하는 비율이 높았다고 한다.

2006년 12월 헌재소장으로 지명받은 그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언행이나 예의범절, 가정사 등과 관련해서는 보수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사회제도 개혁에 있어서는 진보적이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말대로 부친 이기찬(李起瓚·작고) 전 변호사 앞에선 쉰이 넘어서도 안경을 벗었을 정도로 '보수적'이다. 헌재 심판과정에서도 간통죄와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해서는 소수의견이면서도 합헌(合憲)의견을 고수했다. 하지만 대법관 시절 "개명(改名)을 허가할 때는 사회적 혼란보다 당사자의 행복추구권과 주관적 의사결정권을 중시해야 한다"고 결정하고,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한 전원합의체 사건에서 대법관 중 유일하게 무죄 취지 소수의견을 내면서 진보적 입장을 견지했다.

서울대에서 '통치행위의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독일연방헌재의 판례이론으로 확립된 '헌법합치적 법률해석'이란 논문으로 1980년에 고려대에서 헌법학 박사학위를 받아 법원 내에서 일찌감치 헌법재판 이론의 권위자로 꼽혔다.

부친이 입버릇처럼 당부하던 '신독(愼獨·혼자 있을 때도 몸가짐을 삼감)'이 좌우명. 그는 자녀들에겐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라. 노력하다 보면 수퍼맨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고 했다. ▲1945년 전북 임실 출생(65세) ▲전주고·서울법대 ▲사시 8회 ▲법원행정처 조사국장·대법원 도서관장·대전지법원장 ▲대법관·법원행정처장(2000~0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