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은 됐을까. 미국 조지아 주지사가 CD 구입비로 10만 달러의 예산을 청구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을 담은 CD다. 산모들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서라는 것.
하필이면 베토벤이 아닌 모차르트일까. 주지사의 답변은 엉뚱했다. 모차르트는 인류가 낳은 10대 천재여서 그의 음악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주지사는 이른바 '모차르트 효과'란 걸 굳게 믿었던 것 같다. 신생아가 클래식 음악을 듣고 자라면 IQ가 쑥쑥 올라간다는 어느 심리학자의 주장이다. 주지사는 아기들을 모차르트 마냥 모두 신동으로 만들려 했던 모양이다.
'천재소녀' 미셸 위(한국명 위성미)도 한때는 '골프 치는 모차르트'(Golfing Mozart)로 불렸다. 지난 2004년 US 여자오픈에 출전해서 얻은 별명이다. 파5짜리 홀에서 미셸이 친 티샷의 비거리는 무려 300 야드. 2온에 성공해 가볍게 이글을 잡아냈다.
아니 14살짜리가…. 어느 기자가 놀란 나머지 미셸 위를 '골프 치는 모차르트'라고 부르며 놀라워했다.
미셸 위는 LPGA 최장신인 6피트1인치(약 183cm)다. 그래서 생겨난 또다른 애칭은 '빅 위지'(Big Wiesy). '위'(Wie)와 '이지'(Easy)를 합성해 만든 게 '위지'다. 장신인데도 게임을 쉽고 느긋하게 풀어나간다고 해서 언론이 지어준 이름이다.
알고 보면 어니 엘스의 닉네임 '빅 이지'에 빗대 만든 것이다. 미셸의 스윙을 곁에서 지켜 본 어니 엘스는 파워만 좀 더 기른다면 PGA에서도 충분히 뛸 수 있다고 장담했다.
미셸 위가 프로에 데뷔한 해는 2005년이다. 그 전해부터 기업들이 '타이거 머니'에 맞먹는 돈을 주겠다며 프로 전향을 부추겼다.
미셸 위는 프로 데뷔 기념으로 소니로부터 1,000만 달러를 챙겼다. 당시 몸값이 3,000만 달러까지 치솟을 것으로 본 전문가들도 상당수였다.
기술과 파워에선 '골프여제' 아니카 소렌스탐을, 팬들의 인기는 (섹스 스캔들 이전의) 타이거 우즈 못지 않고 마케팅 가치는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에 버금가고…. 온갖 찬사가 쏟아졌다.
이에 고무됐는지 미셸 위는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아시아권으로 넓혀간다는 꿈을 세웠다. 그래서 틈틈히 일본말과 만다린을 배웠다는 미셸 위였다.
어쩌면 골프를 엔터테인먼트에 접목시킨 최초의 선수가 되는 게 미셸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닌가 싶었다. 패션 모델도 시샘할 몸매와 얼굴, 훗날 '골프테인먼트'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꿈을 너무 높게 잡았다. LPGA와 PGA를 번갈아 뛰며 성의 벽을 무너뜨린 최초의 골퍼. 무모한 도전을 하느라 4년여의 세월을 그냥 흘려보냈다.
LPGA에서 처음으로 우승을 한 것이 지난해 11월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에서다. 미셸 위는 29일(현지시간) 캐나다 여자 오픈에서 '골프지존' 신지애를 3타차로 꺾고 챔피언 트로피를 번쩍 치켜들었다. 생애 두 번째 우승의 기쁨을 맛본 것이다.
'골프치는 모차르트'…. 왠지 찬사가 아닌 거품이 잔뜩 배어있는 말 처럼 들린다. 차라리 '골프치는 베토벤'이 어떨지. 베토벤은 결코 천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불굴의 의지와 불타는 열정 하나로 '악성' 곧 음악의 성인으로 추앙받게 된 것이다.
한눈 팔지 않고 묵묵히 골프에만 올인하는 ‘베토벤’ 미셸. 팬들의 바람이 아닌가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