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세의 데즈먼드 투투(Tutu) 대주교는 대뜸 물었다. "당신이 날 보러 한국에서 날아온 기자요?" 그는 동양식 인사라며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기자가 함께 고개를 숙이자 그는 미소짓더니 더 고개를 숙였다.
24일 오후 1시 남아공 케이프타운의 투투 평화재단에서 그를 위한 송별회가 열렸다. 지난 7월 "79번째 생일을 맞는 10월 공식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던 그는 이날 오후 부인과 캐나다행 비행기에 올랐다. 10월까지 크루즈 여행이다.
투투는 부인·딸·손녀·재단직원 등 10여명이 함께 한 점심에 기자를 초대했다. 손녀(4)의 재롱을 보는 얼굴에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투투는 1980년대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흑인 차별 정책) 반대 운동을 주도했고, 1984년 노벨평화상, 2007년 간디평화상을 받았다. 최근에는 만델라 전 대통령을 대신해 각종 남아공 월드컵 행사에 참여하는 등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는 은퇴 이유에 대해 "이제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야 할 때"라고 밝혔다.
―은퇴를 선언한 소감은?
"가족을 위해 온전히 헌신할 수 있는 시간이 오기를 기대해 왔다. 특히 아내와 손자들에게. 손자와 손녀가 7명이나 된다. 대단하지 않은가? (남아공 성공회 신부는 결혼이 가능하다) 아내는 언제나 내 일 때문에 바빴다. 이제 둘이 값진 시간을 보낼 때가 왔다."
―은퇴가 이른 것 아닌가.
"난 할 만큼 했다. 은퇴는 다른 이들에게 세상에 공헌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내가 세상에 속해 있는 한 더 열심히 기도할 것이다."
만델라는 집권 이후 진실화해위원회를 만들고 투투를 위원장에 임명했다. 그는 2년 가까이 남아공 전역을 돌며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에 자행된 폭력의 역사를 기록했다. 그는 백인 가해자는 물론 흑인 피해자가 '저항'이라는 이름으로 행한 불법 폭력에 대해서도 조사했으며, 가해자가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사면했다.
―한국에도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가 있었지만, 정치적 편향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정은 나라마다 전후 사정이 있다. 남아공과 한국이 똑같은 단계를 거칠 수는 없을 것이다. 남아공 진실화해위원회의 특징은 진실 찾기에만 매달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가의 통합과 화해를 증진하는 것, 감춰졌던 진실을 고백하는 자를 사면·용서해 주는 것, 희생자들에게 과거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줘서 인간적인 존엄성을 회복하게 하는 것,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인권 탄압을 막는 예방책을 만드는 것이 주요한 목표였다."
투투는 기자가 마련한 은퇴 선물 중 4GB(기가바이트) 카드형 USB를 보자 "이런 동물(animal)은 태어나서 처음 본다"고 했다. 주변에 있던 그의 가족과 직원들이 모두 깔깔대며 웃었다. 그는 2004년 남아공 월드컵 유치 활동을 벌일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들에게 "여러분이 우리에게 표를 던지면 모두에게 천국행 일등석 티켓을 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국 사람들을 위해 조언했다. 그의 말은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말과 같았다.
"서로 사랑하세요. (잠시 침묵) 용서는 쉬운 게 아닙니다. 진정한 화해는 진실의 기반 위에서 생겨납니다. 용서 없이 미래는 없습니다. 복수는 더 큰 폭력을 부릅니다. 복수의 마음이 크면 클수록 상대방의 복수심도 무한대로 커지기 마련입니다. '눈에는 눈'은 결국 세상을 장님으로 만들고 맙니다."
그는 집무실 밖으로 기자를 안내하며 비서에게 말했다. "이제 비행기 타려면 3시간 남았지? 이제 드디어 자유구먼!"
☞투투 대주교
1931년 10월 7일 남아공 트란스발주(州) 클럭스도프 지역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흑인을 차별하는 정부의 교육 정책에 반대하며 교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1962~1966년 영국에서 수학하면서 신부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남아공으로 돌아와 본격적인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투쟁에 나섰다. 그 공로로 1984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1986년 남아공의 영국 국교회(성공회) 최초로 흑인 대주교가 됐다. 투투는 에이즈, 결핵, 빈곤 등과 관련해 국제적인 활동을 펼쳐왔다. 남아공에서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과 함께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로 꼽힌다. 부인 레아 노말리조 투투 사이에 아들 하나, 딸 셋을 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