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호 정치부 차장대우

8·8 개각으로 입각하게 된 한 장관 후보자는 내정 발표 하루 전날 청와대로부터 이메일을 하나 받았다. 개인 신상에 대한 질문지였다. 100여개 항목에 스스로 O·X를 표시하도록 돼 있었는데, 재산 형성과정에 문제가 없는지, 소득 신고를 안 한 적은 없는지, 병역의무는 잘 이행했는지 등이었다고 한다. 본인 스스로 판단해 문제 소지가 있는지를 자복하라는 취지였다. 이메일 하나만 보낸 청와대측은 어느 부처를 맡아 장관직을 수행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귀띔도 없었다. 그리고는 다음날 ○○부 장관 후보자가 된 것을 알았다. 이메일 하나 외에 검증과 관련해 제출한 서류는 단 하나도 없었다. 이명박 정부 초기 조각(組閣) 때는 자신의 금융·신상 정보를 마음대로 열람해도 된다는 동의서에 사인이라도 했었는데, 그의 경우엔 그런 절차도 거치지 않았던 것이다. 친박계의 핵심으로 장관에 발탁됐던 유정복 의원의 경우도 비슷했다. 전날 장관직 제안이 왔고, 거절할 틈도 없이 하루도 안 돼 발표가 났다.

이러니 총리·장관·청장 후보자들에 대한 문제점이 매일 나오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자녀 명의의 수천만원짜리 통장, '쪽방' 투자나 위장전입 등에 대해 청와대측은 "다 알고 있었다"고 한다. 하루 만에 어떻게 후보자들의 문제를 확인했는지 궁금하다. 더구나 개인정보 수집 동의도 받지 않고서 무슨 방법으로 검증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청와대는 "인사 내용이 사전에 흘러나갈 경우의 부작용 때문에 철저한 보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보안도 중요하겠지만, 사전 검증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기본 검증에만 3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데, 며칠 사이에 총리 후보가 바뀌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실제 그랬다면 촉박한 시간에 철저한 검증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시일이 촉박했다 해도 여러 문제점을 알면서도 임명했다면 "이 정도 갖고 뭐…"라고 생각한 것이다. 위장전입에 대해 "아이들을 좋은 학교에 보내려고 위장전입한 것이라면 부동산 투기하려고 위장전입한 것과는 다르지 않으냐"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 시중(市中)에서 학교 때문에 주소 옮긴 것에 대한 반감은 덜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가 먼저 "이 정도 갖고 뭐…" 라고 나서는 것은 다른 문제다.

어느 후보자는 수뢰 사건 혐의자였다. 청문회에서 본인은 "검찰이 무혐의 내사종결 처분을 했다"고 하나, 검찰이 공식적으로 이를 확인해준 적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뤄진 인사라면 섣부르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한나라당 내 친이(親李) 주류인 장제원 의원조차 자신의 트위터에 "청문회를 통해 지금까지 나온 의혹들은 반드시 해명해야 한다. 대충 넘어가기엔 국민의 마음이 많이 상해 있음을 느낀다"고 했다. 홍준표 최고위원은 '쪽방촌 투기' 의혹을 받는 한 장관 후보자에 대해 "서민 정책을 백날 한들 그런 사람이 장관이 되면 정부가 신뢰받지 못한다. 의혹이 해소되지 않으면 스스로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여권은 6·2 지방선거 패배 후 국민과의 소통 부재를 반성하면서 민심을 잡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그러나 두 달도 안 돼 치러진 7·28 재·보선에서 몇 석 이겼다고 '마이웨이'식 국정 운영으로 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