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자(皇太子)는 결코 황제(皇帝)가 될 수 없다. '펠레의 저주' 못지않게 한국 축구에 반복되고 있는 괴상한 '전통'때문이다. 이런 소리가 나오는 건 '조광래호의 황태자'로 미드필더 윤빛가람(20·경남)이 떠오르면서부터다.

'히딩크호의 황태자'는 '축구 천재'로 불렸던 고종수(32·은퇴)였다. 그는 2001년 1월 홍콩 칼스버그컵 노르웨이와의 1차전에서 히딩크호 첫 골을 터트리더니 두 번째 파라과이전에서도 그림 같은 왼발 중거리포를 작렬시켰다.

하지만 탄탄대로를 달릴 것 같던 고종수는 히딩크 감독으로부터 버림받았다. "축구는 잘하지만 파이팅과 수비 가담 능력이 아쉽다"는 야박한 평가였다. 그는 결국 2002 한·일월드컵 엔트리에도 들지 못했다.

자타가 공인한 '본프레레의 황태자'는 이동국(31·전북)이었다. 본프레레의 데뷔전인 2004년 7월 바레인전에서 전반 2분 만에 선제골을 넣더니 그해 본프레레가 치른 10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해 8골을 터뜨렸다.

그러나 이동국은 아드보카트 감독 체제에서 안정환에게 밀리더니 오른쪽 무릎 부상으로 2006독일월드컵 출전이 좌절됐다. 이동국 대신 아드보카트의 사랑을 받은 건 이천수(29·오미야)였다.

아드보카트는 그에게 "언제나 나를 놀라게 하는 선수"라고 칭찬했지만 이천수는 경망스럽기 그지없는 행동과 기억하기 힘들 만큼 많은 소속팀과 분란을 일으키는 것으로 팬들을 놀라게 했다.

최근 '허정무의 황태자'는 이근호(25·감바 오사카)와 곽태휘(29·교토상가)였다. 이근호는 부진으로 최종 엔트리에서 제외됐고 곽태휘는 불의의 부상으로 남아공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지 못했다.

윤빛가람은 올 K리그 21경기에서 6골 5도움으로 신인 중 최고다. 대표 데뷔전인 11일 나이지리아전에선 선제골까지 넣었다. 그러자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한국의 허리를 이끌 재목"이라는 조광래 감독의 칭찬이 뒤따랐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신문선 명지대 교수는 "언론의 주목과 인기에 만족하고 오만해지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K리그나 대표팀에서의 활약을 넘어 선수로서 더 큰 꿈을 품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윤빛가람이 '롤 모델(role model)'로 삼아야 할 선수로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을 꼽았다. 박지성은 2002월드컵 직전 탈락 1순위로 꼽혔지만 끝내 '히딩크의 황태자'로 부상했고 지금은 한국 축구의 상징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