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청문회 통과 여부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다. 그를 위기로 몰아넣은 건 그의 부적절한 발언이 담긴 강연 CD였다. 이 CD가 어떻게 외부로 새어나와 파문을 일으키게 됐을까.
조 후보자는 지난 3월 31일 서울경찰청 강당에서 관내 5개 기동단에 소속된 경위 이상 간부 460여명을 상대로 특별 강연을 했다. 과거 집회 대응 사례를 평가하면서 G20 정상회의를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를 교육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강연은 캠코더로 녹화됐다. 이 강연 내용 중에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노무현 차명계좌'와 '천안함 유족' 관련 발언이 들어 있었다.
당시 조 후보자는 경비 근무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 5개 부대 직원에게도 특강 내용을 전달하라고 했고, 서울청 경비과는 이날 강연을 1시간 남짓한 분량의 동영상 CD로 만들어 각 부대에 1장씩, 모두 5장을 돌렸다. 부대에선 서로 돌려가며 특강 내용을 봤지만 구체적으로 누가 언제 이 CD를 열람했고 어디에 보관되고 있는지는 기록하지 않았다. 수사기록이나 정보보고 등 기밀 자료였다면 열람·보관 기록을 관리 장부에 다 적어 놓았겠지만, 이 CD는 으레 하는 '교양교육' 자료로 여겨져 부대 안을 막 굴러다니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지금 이 CD가 어디에 있는지, 몇장이 추가로 복사됐는지는 전혀 파악되지 않고 있다. 예비 경찰총수의 운명을 가를 자료는 지난 수개월간 경찰 부대 안에서 자기 나름의 '운명'을 키워가고 있던 것이다.
경찰은 최근 조 후보자의 강연 내용이 언론에 공개될 조짐을 보이자 다급히 CD 회수에 나섰다. 하지만 최초 보급한 5장 가운데 단 1장도 회수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막상 CD를 가지고 있어도 자신이 유출자로 의심받을 수 있어 모두 입을 다물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CD가 최초로 언론에 제보된 건 지난 6월 말쯤으로 알려졌다. 당시 7월 개각설과 함께 경찰청장도 교체될지 모른다는 전망이 나돌 무렵이었다.
한 제보자로부터 CD를 입수한 KBS 보도제작국 '추적60분'팀은 조 후보자가 언급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확인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차명계좌 확인 과정이 더뎌지면서 보도가 계속 미뤄졌고 그 사이 조 후보자의 강연 내용이 국회와 증권가 주변에 루머처럼 조금씩 퍼지기 시작했다. 이 소문은 지난 5일 강희락 경찰청장이 사표를 낸 직후엔 더욱 빠른 속도로 퍼졌다. 그 사이 CD는 KBS 내 다른 부서인 보도국에도 입수됐고 지난 13일 밤 9시뉴스를 통해 공개됐다. 추적60분팀 PD와 기자들은 "데스크가 보도를 막았다"면서 항의 성명을 발표하는 등 KBS 안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그렇다면 3개월간 잠자고 있던 CD가 왜 이 시점에 유포됐을까. 사정당국 관계자는 "현재 CD 유출 경로가 대략 파악됐다. 경찰청장 인사에 맞춰 CD를 공개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CD 공개가 조 후보자 낙마를 위한 언론플레이 결과라는 주장이다. KBS 보도제작국과 보도국에 각각 제보된 자료 역시 카메라 촬영 각도가 서로 다른 CD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청장이었던 조 후보자의 경쟁자는 모강인 경찰청차장, 김정식 경찰대학장, 윤재옥 경기청장 등으로 꼽힌다. 조 후보자가 외무고시, 모 차장은 간부후보, 김 학장은 행정고시 출신이고 윤 청장은 경찰대를 나왔다. 이 중 가장 언론의 주목을 받은 인사가 조 후보자와 윤 청장이었다.
경찰대 1기 수석 입학·졸업자인 윤 청장은 경감 승진도 1호였고 경찰의 별이라는 경무관도 동기 중에 가장 먼저 됐다. '경찰대 1호 제조기'라는 별명이 붙었고, 그래서 많은 동문은 경찰대 출신 첫 청장 후보감으로 주저 없이 윤 청장을 꼽았다.
지난 6월 채수창 전 강북서장이 조 후보자의 지나친 실적주의를 비판하며 동반 사퇴하자고 주장한 이른바 '항명 파동'이 벌어졌다. 이때도 경찰 일부에선 채 전 서장이 경찰대 1기 출신임을 들어 조 후보자에 대한 경찰대 1기들의 견제가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았다.
전남 함평 출신인 모강인 차장은 간부후보 32기로 2005년 경무관으로 승진했고 현 정부에서 대통령실 치안비서관을 지냈으며, 충남 예산 출신인 김정식 학장은 행시 30회 출신으로 2004년 경무관으로 승진해 충남청장과 경찰청 정보국장을 거친 정보통이다. 조 후보자가 낙마하면 모 차장과 김 학장, 윤 청장은 잠시 접었던 '대망'을 다시 꾸게 된다.
지난해 검찰총장을 뽑을 때도 천성관 후보자가 비리 의혹에 휘말려 사퇴하면서 김준규 총장이 어부지리를 했다. 경찰청장 인사도 검찰의 선례를 따를지 주목된다. 조 후보자 청문회는 23일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