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안의 혀처럼 잘해줘요. 정말 여기 오길 잘했어요."

지난 18일 낮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실로암요양원 2층 여성 숙소에서 만난 원 할머니(82)는 이렇게 말했다. 지병인 당뇨가 심해져 10여년 전부터 눈과 귀가 어두워진 할머니는 집에서 간단한 일을 하기도 어려웠다. 아들·며느리·손주들이 외출하고 나면 집에 혼자 있는 것도 외로웠고 자신을 위해 자식들이 일찍 귀가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원 할머니는 지난달 문을 연 시각장애 노인을 위한 '실로암요양원'에 들어왔다.

김선태 목사(왼쪽)가 실로암요양원에 들어온 시각장애 노인들과 함께 텃밭의 고추를 따고 있다. 뒤에 보이는 건물이 실로암요양원이다.

중증(重症) 시각장애 노인을 위한 실로암요양원이 19일 오전 개원예배를 갖고 공식 출범했다. 사회복지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회가 대지 998㎡(약 300평)에 연면적 824㎡(약 250평), 지하 1층·지상 4층으로 신축한 요양원(정원 30명)은 본인도 시각장애인인 김선태(69) 목사가 평생에 걸쳐 이루고자 했던 마지막 꿈이다. 6·25전쟁 중 폭발사고로 시력을 잃은 김 목사는 구걸생활을 비롯한 온갖 어려움을 딛고 목회자가 돼 자신과 같은 처지의 시각장애인 돕기에 평생을 바쳤다. 맹인교회(1972년)를 세워 시각장애인들을 신앙으로 이끌고, 실로암안과병원(1986년)을 세워 실명 위기에 놓인 어려운 형편의 환자를 도왔으며,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1999년)을 설립해 시각장애인들의 자활을 도와온 그가 마지막으로 꿈꿔온 것이 시각장애 노인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요양시설이었다.

18일 오전 실로암요양원에서 만난 김선태 목사는 "1970년대 일본미국의 시각장애인 시설을 둘러보면서 '여기가 낙원이구나'라고 생각했다"며 "당시 땅바닥에 주저앉아 '하나님, 우린 언제 이런 시설을 갖게 될까요?'라고 기도했던 생각이 난다"고 했다. 김 목사는 그때부터 '다리 밑에서' 살다가 세상을 떠나는 우리나라 시각장애인들이 노후에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요양원을 그렸다. 그는 "요양원 주변에 과일나무를 다양하게 심어 에덴동산을 이루고 싶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실로암요양원 주변엔 대추나무를 비롯한 과실수와 상추, 고추, 토마토, 들깨 등 작물을 심고 키우고 있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시각장애인들의 상황도 변했다. 선천적 시각장애인의 비율은 줄고 각종 질병 등으로 도중에 시력을 잃게 된 경우가 늘었다. 또 자녀들과 함께 살기보다 독립적으로 생활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현재 실로암요양원에 들어와 있는 남성 3명, 여성 5명도 대부분 중도 실명했다.

이들은 "요양원은 집안에만 있지 않고 텃밭에서 채소도 따고 산책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실로암요양원은 노래, 공예, 사물놀이, 안마, 체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이보라 원장 등 요양원 관계자들은 "노인분들은 외출하는 것을 좋아하신다"며 "인근의 저수지 산책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김선태 목사는 실로암요양원을 준비하면서 '너희가 내 안에 거(居)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는 요한복음 말씀을 늘 가슴에 새겼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10년 이내에 좀 더 완벽한 시각장애인 시설을 만들어 후배에게 넘기고 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