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평북 신의주시에 위치한 '채하(彩霞)시장'은 입구부터 물건을 나르는 인력거와 자전거로 혼잡했다. 시장에 들어서자 상인들과 주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지난 3월 몇몇 상인들만 자리를 지키던 함북 온성시장의 모습과는 완전 딴판이다.
매대(진열대)마다 중국산 제품들이 쌓여 있다. 플라스틱 접시·사기그릇·유리컵·물병·슬리퍼·휴지통·수저·샴푸·화장품·세제·칫솔…. 죽(竹)부인까지 보인다. '샤와기'라고 적힌 샤워기 꼭지가 눈길을 끈다. 한 탈북자는 "최근 북한 대도시의 신축 주택은 샤워시설을 갖추고 있다"고 했다. 잡화 매대는 우리 재래시장 못지않다. 한 상인은 몰래 촬영 중인 북한 내부 소식통에 "샴푸 안 사요?"라고 외친다. 의류 매대에 가득한 각종 여름옷들도 대부분 중국산이라고 한다.
과일 매대에는 북한 시장에서 보기 어려운 수박까지 등장했다. 한 상인은 수박 옆에 앉아 골판지로 연방 부채질이다. 북쪽이지만 8월 한여름 더위는 남한과 마찬가지인 것 같다. 바나나·복숭아·자두 등도 보인다. 철물 매대에선 망치·못·TV 부속품·손전등 등을 판다. 붉은색 별이 찍힌 검정 오토바이 헬멧이 시선을 잡는다. 콩기름을 담은 것으로 보이는 페트병과 고춧가루·생선·문어·현미쌀·옥수수·수수 등은 식품 매대에 올라와 있다. 한 상인은 '추가 달린 저울'을 이용해 곡물의 무게를 잰다. 한 탈북자는 "중국산 전자저울은 틀리는 경우가 많아 추저울을 쓴다"고 했다. 매대를 돌며 국밥과 냉면, 음료수를 배달하는 상인도 보인다. 이 상인은 당장 돈을 받지 않고 조그만 장부(帳簿)에 뭔가를 쓴다. 이런 장면은 우리 재래시장에서도 볼 수 있다.
지금 북한 시장을 장악한 상인은 이른바 '아줌마 파마'를 한 40·50대 여성들이다. 이번 동영상에서도 남성 상인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북한 소식통은 "북한 시장은 1990년대 중반 100만명 이상이 굶어 죽을 당시 아줌마들이 옷가지라도 들고 나와 팔면서 커지기 시작했다"며 "이후 아줌마들이 시장을 휘어잡고 있다"고 말했다. 남성들은 주로 '할 일 없는' 직장에 간다고 한다. 북한이 2007년부터 시장 단속에 나서면서 '50세 미만 여성 장사 금지' 등의 조치를 취한 것도 시장의 주류(主流)가 아줌마들이기 때문이란 관측이다. 아줌마 상인들은 인민보안원(경찰)들의 시장 단속에 온몸을 던져 저항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들은 장사를 마친 뒤 남편과 아이들에게 저녁을 차려주고 집안일까지 끝내야 잠자리에 들 수 있다.
화폐개혁 이전 북한 시장에는 단속 보안원과 시장 관리원(자릿세를 받는 사람)이 자주 목격됐다. 보안원들은 값도 치르지 않고 물건을 집어가거나 뇌물을 챙기곤 했다. 무허가 매대를 단속한다며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동영상에선 보안원들의 행패가 보이지 않았다. 내부 소식통은 "화폐개혁 실패 이후 시장이 더 활발해지면서 단속도 예전처럼 맘대로 못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했다. "결국 시장이 체제를 넘는 형국으로 가는 것 아니냐"(대북 소식통)는 얘기까지 나온다.
그러나 한 탈북자는 "2005년까지 시장 상인 중에는 20·30대 젊은 여성들도 꽤 있었는데 요즘 40·50대가 대부분인 걸 보면 젊은 층의 장사는 통제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에서 장사할 여력조차 없는 도시 빈민이나 농촌 사람들은 화폐개혁 이전보다 더 힘든 삶을 이어가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