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재찬씨 사망 소식을 들은 인근 주민들은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주민 이모(75)씨는 "우울증이 있는 것 같았는데 안타깝다"며 "밤마다 아파트를 돌아다니면서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은 "이웃과 거의 접촉하지 않았고 관리사무소 직원 등이 가끔 벨을 눌러도 응답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부분 주민들이 이씨가 삼성가(家) 가족이란 사실을 몰랐다.

지인들은 이씨가 최근 들어 많이 외로워했다고 전했다. 이씨와 초·중·고교 동창이라는 한 친구는 "아내와 사이가 안 좋았던 것으로 안다"며 "아들들도 자주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18일 삼성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의 손자 이재찬(46)씨가 숨진 채 발견된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한 아파트 현관 앞.

그는 또 "사촌형(이재현 CJ회장)과 사촌 동생(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 사이에서 열등감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며 "하지만 새한미디어 경영에서 손을 뗀 이후에는 조용히 살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씨와 가깝게 지냈다는 아파트 앞 부동산중개사 A씨는  "평소 외롭다고 해 말동무를 많이 해줬다"며, "'이상한 맘 먹지 마라'고 누누이 얘기했는데"라고 안타까워했다. A씨는 "크고 잘생겼고 점잖았다"며, "도자기 굽는 게 취미여서 내게 말이 그려진 도자기 컵을 선물로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집안(삼성가)에 대한 감정은 복잡했던 것으로 보인다. A씨는 "(이씨가) TV에서 자기 부친(고 이창희 전 회장)이나 가족들 얘기가 나오면 상당히 싫어했다"고 말했다. 반면 인근 세탁소 주인 박모(70)씨는 "이씨 집으로 배달을 갔더니 고 이병철 회장이 학사모를 쓰고 있는 사진을 가리키면서 '우리 할아버지'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더라"고 말했다. 동네 수퍼 주인 이성일(가명·49)씨도 "가끔 '내가 재벌가 사람이다'고 말했었다"고 했다.

주민들은 이씨가 평소 가짜 권총과 칼을 차고 군화를 자주 신었으며, 군용 베레모와 군복을 입고 다녔다고 전했다. 한 주민은 "눈빛이 흐리고 말투가 어눌했다"고 기억했다. 자살 당일 새벽 2시 이씨는 PC방을 나오며 한 주민에게 "내가 그동안 소련을 다녀와서 자주 들르지 못했다"고 말하고선 "아무래도 내가 올해 삼재가 낀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생활고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진 이씨는 주변 가게들에 100만원이 넘는 외상을 진 것으로 나타났다. 동네 문방구 주인은 "한 번은 이씨가 볼펜 등 학용품을 잔뜩 고르더니 '지금 내가 돈이 없다'며 외상을 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동네 수퍼 주인은 "작년 8월부터 6차례에 걸쳐 55만4100원어치를 외상으로 가져갔다"고 말했다. 세탁소 주인도 "밀린 외상값이 50만원 정도"라며, "한번은 외상값을 달라고 했더니 '50만원 빌려주면 100만원을 한번에 갚겠다'며 오히려 돈을 빌려달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오래된 체어맨 승용차를 타고 다녔다고 주민들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