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강사

입추가 지났지만 가늠키 어려운 장대비에 해마다 겪는 수해가 재발할까 걱정되는 시기이다. 국보 285호 울산 반구대 암각화는 한반도 역사의 첫 장을 채워주는 소중한 기록이자, 한국인이 만들어 낸 조형예술의 맏형이다. 이 암각화도 이 계절이면 물에 잠겨 있다.

최근 울산광역시는 반구대 암각화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시키려 하고 있다. 얼마 전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이 등재에 성공,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낀 바 있다. 사실 내 고장 문화유산이 인류의 유산이 되는 것은 여간 큰 기쁨이 아니다. 반구대 암각화가 세계유산이 된다면 울산 시민들에게는 또 하나의 자랑이 될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반구대 암각화가 세계유산이 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원형보존'이다. 여기에는 등재 대상뿐 아니라 둘러싸고 있는 자연환경까지 포함한다. 유네스코는 문화유산은 물론이요 그 주위의 환경의 상태까지 조금도 인위적 변경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 조건은 해당 문화유산이 있는 지자체의 의지에 달려 있다.

반구대 암각화의 경우 주변 대곡천 일대가 원형을 유지해야 세계유산에 등재될 수 있다. 해마다 물에 잠겨 8개월 동안 볼 수 없는 상태에서는 세계유산 등재는 언감생심인 셈이다. 암각화를 8개월 동안 물속에 가두고 있는 원인은 대곡천 하류의 사연댐이다. 이 댐의 수위는 60m. 암각화가 연중 물 밖에 있으려면 수위가 52m 정도로 낮아져야 한다. 울산시는 이때 생기는 8m만큼의 수원(水源) 손실을 걱정한다. 국토부의 통계에 의하면 수위를 52m로 낮추더라도 울산시의 용수공급에는 문제가 없고, 낙동강에서 대체 수원을 끌어주겠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수질은 현재보다 낮아진다고 한다. 비용도 더 들기 때문에 울산시로서도 선뜻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울산시가 내려야 할 결정은 분명하다. 울산시민들에게 우리 지역에 있는 문화유산을 세계유산에 등재시킬 기회인데, 거기에는 용수에 관련된 양보가 필요함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설명하고 의사를 묻는 과정이 필요하다. 울산시민은 현재 자기 고장에 있는 위대한 유산이 처한 상황을 바르게 알 필요가 있고, 뭘 해야 할지 판단할 기회를 얻어야 한다. 그것은 울산시가 진정성을 갖고 시민들과 대승적으로 논의하고자 할 때 이루어질 일이다. 이 과정에 우리 한국인의 자존심이 걸려 있다는 사실도 꼭 기억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