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를 세 번이나 답사하고 백두산을 여덟 번 올라서 지도를 만들었다는 이야기. 어릴 적 국어 교과서에서 읽었던 김정호와 그의 '대동여지도'에 대한 내용이다. 한국 사람이면 대개가 기억하는 이 이야기는 사실 일제 치하 조선총독부가 만든 '조선어독본'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책이 그려낸 김정호는 영락없는 '영웅'이다. 차라리 신화라 해야 할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했다. 나라에 이렇다 할 변변한 지도가 없는 현실을 개탄하고 모진 고초를 겪어가며 혼자 힘으로 위대한 지도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진다. 흥선대원군은 이 위대한 지도 제작자를 탄압하고 옥에 가두어 죽였다. 그의 지도는 모두 소각되었다. 일제가 교과서를 통해 조선 사람을 이토록 찬양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일제는 김정호를 신화화함으로써 조선 조정의 무능을 극대화하고, 이를 조선 학생들에게 각인시키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 김정호가 여러 대에 걸쳐 축적된 지도학적 성과를 계승하고 새로운 모색을 통해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학계에서 충분히 증명됐다. 또 그가 탄압을 받아 옥사했다는 어떤 기록도 확인할 수 없으며, '대동여지도'는 30여질이 남아 있다. 하지만 일제의 교과서에 담겼던 이야기는 1990년대 중반까지 우리 교과서에도 실려 있었다.
"우리 일본은 조선 사람에게 식민 교육을 심어놓았다." 마지막 조선 총독을 지낸 아베가 조선을 떠나며 했다는 말이다. 내년이면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세상에 내놓은 지 150년이 된다. 일제가 씌워 놓은 김정호에 대한 오해와 왜곡을 거둬내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