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고흥길 정책위의장은 17일 원내대책회의에서 "통일세에 관해 당과 긴밀한 사전협의가 있었으면 좋았는데 그런 과정이 전혀 없이 현장(대통령의 8·15 기념식 연설)에서 당대표, 원내대표, 정책위의장이 얘기를 들었다"면서 "우리가 소통을 가장 강조하고 있는데 이렇게 정부와 한나라당, 한나라당과 청와대가 소통이 막혔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정두언 최고위원은 전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가 12일 내놓은 행정고시 폐지안에 대해 "매우 중요한 사안인데 당정간 협의도 없이 발표하느냐"고 했다.

안상수 대표 등 한나라당의 새 지도부는 지난달 14일 전당대회에서 선출될 때 "당·청관계를 수평적으로 재정립하겠다" "당을 중심으로 국정운영이 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랬던 당 지도부가 불과 보름 만에 잔뜩 부어 볼멘소리를 했었다. 안 대표는 정부가 전기·도시가스 요금 인상을 발표한 직후인 지난 2일 "정부는 앞으로 공공요금 인상 전에 당과 긴밀한 협의를 거쳐줄 것을 엄중히 요청한다"면서 "앞으로 정부·청와대와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해 나가고 당·청관계를 재정립해 일하는 한나라당으로 거듭나겠다"고 했었다. 그러고 보름도 안돼 다시 칭얼대야만 하는 게 오늘의 집권당이다.

통일세든, 행정고시 폐지안이든, 다른 어떤 정책이든 한나라당이 법안에 브레이크를 걸고 예산을 통과시켜 주지 않으면 정부든 청와대든 손을 들 수밖에 없다. 정부와 청와대가 집권당의 도움없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이 청와대 지침이라고만 하면 군소리없이 받들어 모셔왔기 때문에 한나라당 대표 이하 고위 당직자들이 8·15 광복절 기념식에서 대통령 연설을 듣고서야 통일세라는 중요한 문제를 처음 알게 된 것이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인 셈이다. 지금이라도 한나라당이 마음만 독하게 먹으면 당장 청와대와 정부의 태도를 고쳐놓을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철이 덜 난 어린애처럼 투덜대고만 있다. 저래 가지고 어떻게 정권 재창출을 할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청와대는 지난달 국민소통비서관 신설 등을 담은 조직개편과 함께 각각 3선의원 출신인 임태희 대통령실장과 정진석 정무수석 인선안을 내놓으면서 소통을 강조했었다. 그로부터 한달도 되지 않아 여당 내에서 "소통이 막혔다"는 얘기가 다시 나오고 있으니 소통장애는 여권의 불치병(不治病)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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