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오후 행정구역상 전남 영암군에 자리한 영산호하굿둑 배수관문. 길게 뻗은 왕복 8차로 도로에는 출퇴근 시간이 아닌데도, 오가는 차량으로 혼잡했다. 차량들은 대불산단과 하굿둑을 잇는 삼호대교를 거쳐 목포 하당지구를 향하는가 하면, 반대 방향인 목포에서 대불산단 방면으로 달리고 있었다.
노기창 목포시 공보담당은 "신도심 하당지구 바다 건너편에 들어선 대불산단과 현대삼호중공업 근로자만 대략 3만명에 달해 교통량이 많다"고 했다. 이 탓에 출퇴근 시간에는 평소 20분거리가 1시간이 넘게 걸릴 정도로 교통체증이 심각하다. 시는 근로자 대부분이 대불산단과 가까운 하당·옥암·남악지구 등 신도심에 거주하는 것으로 추측한다.
나주와 영암을 굽이쳐 흐른 영산강은 영산호하굿둑에서부터 바닷물과 합쳐진다. 강과 목포만의 중간지점을 정확하게 위아래로 가른 지점이 목포와 영암의 행정구역이다. 때문에 배수관문에서도 목포의 시가지 전경은 한눈에 들어온다.
우선 북서쪽 방향에 섬으로 복원 작업이 한창인 대삼학도가 보이고, 그 뒤로 일등바위와 이등바위가 불룩 솟은 유달산이 목포 시내를 굽어보고 있다. 유달산 주변 유달동과 만호동이 바로 원도심 지역. 1897년 유달산 아래 목포항이 개항된 이후, 일제에 의해 대륙 수탈의 전진기지로 활용되었다.
김양희 시학예연구사는 "목포의 도시화가 시작된 것은 사실상 이때부터"라며 "일본의 도심계획에 따라 목포는 비약적으로 발전, 1930년대에는 전국 6대 도시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유달산 주변 죽교동과 북교동 등에 살던 조선인들은 일자리를 찾아 목포항으로 몰렸다. 하역 노동을 하기 위해서였다. 집으로 돌아갈 때면 울분을 달래기 위해 역 주변 선술집을 찾았고, 남교동 일대는 자연스럽게 상가가 밀집하게 됐다.
하지만 원도심은 1990년 초부터 급격히 쇠락했다. 바다를 매립해 만든 하당지구가 개발되기 시작했기 때문. 하굿둑 맞은편에 들어선 하당지구에는 고층 아파트 단지가 즐비하다. 시는 1989년부터 1999년까지 1·2단계에 걸쳐 상동, 옥암동, 용행동, 산정동 일대 278만940㎡와 공유수면 68만6400㎡를 매립해 신도심 하당지구를 완성했다. 현재 시민 8만명가량이 거주한다.
이 지구에서 동쪽으로 연이어 자리한 신도심이 옥암과 남악지구다. 이른바 '남악신도시'. 하당과 마찬가지로, 이곳에도 고층 아파트가 줄줄이 서 있다. 유달산 주변 원도심 인구는 하굿둑 도로를 달리는 차량처럼 급격히 주거 여건이 좋은 옥암과 남악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목포인구 24만3000명 중 10만명가량이 신도심에 거주한다.
하당지구에는 빈땅이 없다. 아파트와 모텔, 음식점, 술집, 쇼핑센터 등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이 탓에 하당지구 주민들마저 옥암·남악지구로 이사하고 있다고 한다.
옥암지구에는 대형 평수의 아파트가 많다.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이 이전했고, 주변에는 널찍한 대학 부지도 있다. 목포시청 주변에 있는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과 목포지방검찰청 목포지청도 이곳으로 청사를 옮기고 있다.
행정구역상 무안군 삼향면에 자리한 남악지구에는 전남도청과 전남도교육청, 전남개발공사, 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가 자리하고 있다. 행정 구역만 무안일 뿐 사실상 목포와 동일 생활권이다. 목포역과 도청은 '백년로(왕복 8차로)'를 통하면 차로 20분 거리에 있다. 전남경찰청, 전남농협지역본부 등 관공서 건설도 한창이다. 하루가 다르게 빌딩이 올라가고 있다.
최재혁 시택지개발계장은 "신도심 건설과 도로망 확충, 주택정비, 목포대교(북항~대불산단) 건설 등 목포는 상전벽해(桑田碧海)를 방불케 할 만큼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