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을 절실하게 기다린 선수가 있다. 부산 동의대 4학년 좌완 투수 윤지웅(22)이다. 그는 부산공고를 졸업하던 2006년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물'을 먹었다. 그 뒤 4년간 이를 갈아왔다.

올해 대학 최고 투수 중 하나로 평가받은 그는 1차 3순위로 넥센에 지명됐다. 윤지웅이 웃음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전 반드시 성공해야 합니다. 야구를 잘해야 할 이유가 남보다 더 절실하거든요!" 무슨 사연일까.

"어머니 미안해요"

윤지웅의 집은 찢어지게 가난했다. 그 흔한 세탁기 하나 없었다. 방 2개짜리 집에 월세로 어머니와 대웅-지웅 형제가 살았다. "공사장에서 전기 놓는 일을 하는 아버지 따라 이곳저곳 돌다 이모가 사는 부산으로 내려왔어요."

동의대 투수 윤지웅은 2010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대졸 예정 선수로선 가장 높은 1라운드 3순위로 넥센에 지명됐다. 그는“4년간 더 연습한다는 생각으로 대학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일감 따라 방방곡곡을 헤맸다. 두 형제 기르고 먹이는 건 어머니(김만자·50)의 몫이었다. 어머니는 아침 7시에 일어나 아이들 밥을 차려준 뒤 식당으로 가 밤 11시쯤에야 돌아왔다. 다시 빨래하고 나면 새벽 2시다.

"자다 어머니가 흐느끼는 소리에 깨곤 했어요. 내색은 안 했지만 일이 힘들었던 거죠. 어릴 땐 따라 울었고 학생 땐 '조금만 참아달라고, 미안하다'고 했어요." 지금도 집 형편은 몇 년 전 세탁기 생긴 것 말곤 달라진 게 없다.

투수가 되다

그가 다닌 부산 대연초등학교 야구부는 전통의 명문이었다. 양상문, 마해영, 문동환, 손민한, 이혜천이 거쳐간 곳이다. 윤지웅은 "열심히 공부나 해라"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졸라 4학년 때 야구공을 잡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야구부에 입단한 '1998년 3월 28일'이란 숫자가 아직도 선명하다. 하지만 부산중을 졸업할 때까지 그는 거의 뛰지 못했다. 외야수를 주로 봤는데 '키 작고 힘없다'는 이유로 1,2학년 후배에게 밀렸다.

경기 중 일부러 감독 앞에서 방망이를 휘둘러대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당시 스윙 연습 때문에 아직도 굳은살이 박여 있는 손을 볼 때마다 "결국 뛰지 못했지만 열심히 노력한 흔적"이라고 했다.

부산공고 1학년 때도 그의 키는 1m60밖에 안됐다. 키 늘이고 체중 불리려 매일 라면을 간식으로 먹고 운동하지 않는 시간엔 잠만 잤다. 고 3때 키가 1m74가 되자 비로소 감독이 관심을 보여왔다.

"손목 힘이 좋으니 투수를 해보라"는 것이었다. 원주고와의 연습경기에 처음 등판해 합격점을 받았다. 하지만 겨울 전지훈련 동안 갈비뼈에 금이 갔는데 담 걸린 줄 알고 무리하게 던지다 초반엔 경기도 뛰지 못했다.

대학 최고가 되다

'혹시'했지만 '역시'였다. 2006년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그의 이름을 부른 구단은 없었다. 아버지는 "그만두라"고 했다. 어머니도 "최고가 안 되려면 빨리 포기하는 게 낫다"고 했다. 고민하던 그는 동의대 진학을 택했다.

신입생이던 2007년 조성옥 감독(작고)이 부임한 것은 그의 야구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조 감독은 패배의식 가득 찬 선수들에게 '뭐든지 두려워하지 말고 부딪쳐라'며 정신력과 함께 선수들에게 땀과 고통을 요구했다.

"겨울훈련 때는 하루 4~5시간씩 계속 달리기만 했어요. 산도 넘고, 운동장도 뛰고…. 달리기가 끝나면 또 죽기살기로 던졌죠." 윤지웅은 숙소에 제일 늦게 들어가는 선수였다. 피칭에 몰두하다 새벽 2~3시를 넘긴 적도 많았다.

그 결과 2학년 때인 2008년 중반부터 3학년 말까지 85이닝 1자책점을 기록했다. 그 기간 동의대는 세 대회에서 우승했다. 윤지웅이 말했다. "지금의 저를 만든 조 감독 사후 치른 2009 하계리그 결승전을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어머니 고마워요"

윤지웅은 올해 부진했다. 1월까지는 괜찮았는데 갑자기 허리, 팔꿈치, 무릎 등에 통증이 왔다. 겁을 잔뜩 냈는데 다행히 단순 피로누적 진단을 받았다. 그는 "너무 잘하려고 욕심내다 몸에 과부하가 걸린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올 초 4가지 목표를 세웠다. 우승, 국가대표팀 발탁, 프로 1라운드 지명, 아시안게임 출전이다. 국가대표 꿈과 프로 지명 꿈은 이뤘지만 아시안게임 예비엔트리에선 제외됐다. 대회는 아직 2개(대학선수권과 전국체전)가 남아 여전히 우승 목표는 살아있다.

프로 지명 이후 윤지웅은 벌써 프로 첫해가 될 내년의 단계별 목표도 세워놓았다. 스프링캠프 합류, 3월 시범경기 살아남기, 안 아프고 1군에 붙어 있기, 신인왕 되기가 그것이다.

"프로에선 튀고 싶어요. 절 알릴 수 있는 피칭을 하고 싶고요. 대학 때 했던 것처럼 중간이나 마무리 투수가 제게 맞는 것 같아요. 주자 없을 때보다 위기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르는 게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더라고요."

윤지웅은 계약금을 받으면 어머니에게 드리고 싶다고 했다. "아마 돈을 벌면 제일 먼저 집을 마련할 것 같아요. 좀 어색하겠지만 거기서 아버지, 어머니와 형하고 네 식구가 편하게 밥 먹는 꿈을 요즘 자주 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