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고문

지난 7·28 재·보선이 있은 지 며칠 뒤 각 신문에는 참 우스꽝스러운 사진 한장이 실렸다. 서울 은평을(乙)에서 당선된 이재오씨가 한나라당사를 찾아와 어느 최고위원과 서로 이마가 땅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사진 설명에는 이것이 그를 선거에서 이기게 한 '낮은 자세'이고 곧 국민과 '소통'하는 방법이라고 적혀 있었다.

국민 또는 선거구민을 하늘처럼 떠받들어 모시며 그들의 얘기를 경청하고 '머슴'의 자세를 보이는 것이 곧 소통의 핵심인 것은 사실이다. 자기가 대변할 국민이 진정 무엇을 요구하며 그들의 처지가 어떠하며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주려고 노력할 것인가―그것이 곧 국민의 공복이 해야 할 일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소통의 참뜻, 낮은 자세, 겸손한 언행을 익히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근자의 선거에서 김문수 경기지사, 이광재 강원도지사 당선자 그리고 이재오 의원 등이 보여준 선거운동법은 새로운 패턴으로 떠오르고 있다. 김 지사는 택시기사를 하며 민정을 살폈고 선거기간 중 집에서 잔 적이 없을 정도로 선거구민 '속'에서 살았다고 한다. 이광재 당선자 역시 마을의 노인회관 같은 곳에서 그들과 함께 자고 구민들의 가정집에서 식사를 하며 전 지역을 빠짐없이 누볐다고 했다. 이 의원이 중앙당이나 그 누구의 선거지원도 마다하고 오로지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전 지역을 누빈 것도, 또 노인회관에서 윷놀이를 하는 모습을 보인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어쩌면 이들의 선거운동 방법은 앞으로 전국적으로 교범이 돼 후보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선거지역에서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하는 사태로 번질 것으로 보인다. 과거 공직자들이 얼마나 주민 위에 군림하고 얼마나 조직표에 의존했으며 얼마나 돈선거를 했으면 김문수-이광재-이재오 식(式) 선거운동에 감동해 두말없이 그들에게 표를 찍어줬을 것인가―공직 후보자들이라면 그것을 그냥 지나칠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소통의 모든 것인가? 허리를 깊숙이 굽히고 주민들 손을 두손으로 감싸쥐며 억지웃음으로 감사를 연발하는 것이 곧 공직자들의 소통이고 그러한 물리적·신체적 '낮은 자세'가 곧 국민의 뜻을 받드는 것이고 국정 운영의 책임을 진 지도자의 자세인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들 소통의 달인들이 그 과정에서 자신이 가진 정책의지와 신념들을 얘기하지 않았을 리는 없겠지만 그런 것들은 알려진 것이 없고 또 그런 것은 중요하지도 않다는 식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우리네 공직자들에게는 '소통의 방식'으로 고정화된 것들이 있다. 공사장이나 공장 등 현장을 시찰할 때 점퍼 입기, 시장에 가서 상인들과 악수하고 끌어안기, 어린이 안아주기, 지하철 타기, 시장통에서 음식 먹기, 산(山) 입구에서 등산하는 척하기 등등 어느 누구도 다 따라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것을 진정성 있는 것으로 여겨 준 적이 없는 낡은 방식들이다. 김문수·이재오·이광재식(式)이 반드시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적하고 싶은 것은 카메라를 의식한, 그래서 형식에 치우친 나머지 정책적으로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것을 주민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는 과제 등이 실종되거나 묻혀버리는 일은 없는지 그것이 걱정될 뿐이다.

소통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큼 자기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그 반대이기도 하다. 즉 소통은 쌍방향이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소통의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 말을 듣지 않는다는 점이라는 것을 여러 사람이 지적해왔다. 사실 그는 대통령이 된 후 3년 동안 20여차례 기자회견을 가졌지만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일방통행식 회견이었지 기자들의 질문, 즉 국민이 알고 싶어하는 것들을 듣고 즉석에서 자기 의견을 말하는 쌍방향 회견이었던 것은 한 번뿐으로 기억된다. '차기'를 내다보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가 국민과 소통하는 방식도 국회 로비 계단에서의 '몇 마디'뿐이었지 국민과 대화다운 대화를 가졌다는 기억이 없다.

공직자나 정치인들이 기자회견을 통해 말하고 듣고 토론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대변인 정치'도 그들이 어려운 과제를 풀기 위해 국민과 직접 대면해서 소통하는 것을 피하려는 구실일 경우가 많다. 거기서도 일방적 발표나 상대방 비난만 무성할 뿐 날카로운 공방을 통한 실체의 접근은 없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지도자들의 쌍방향 대화를 통한 소통이고 국민 앞에 당당히 나서는 책임 있는 자세다. 그것은 허리를 굽히는 각도와는 상관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