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오후 광주광역시 남구 방림동 김정옥(78)씨 아파트에 하얀 봉투 하나가 배달됐다. 국가보훈처가 보낸 문서에는 해방을 몇 달 앞두고 세상을 뜬 독립운동가 김교신(金敎臣·1901~1945) 선생이 이번 광복절을 맞아 건국포장을 받게 됐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아버지의 명예를 위해 김씨 가족과 지인들이 지난 10여 년 동안 10여 차례 문의 및 신청한 끝에 얻은 값진 결과였다. 김 선생의 2남 6녀 중 넷째 딸인 김정옥씨는 "편지를 읽는 순간 온몸에 힘이 풀렸다"고 했다.

김교신 선생은 '성서조선(聖書朝鮮) 사건'의 핵심 인물이다. 성서조선은 김씨가 성서 중심의 신앙생활을 추구하는 일본 무(無)교회주의자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 문하에서 함께 수학한 함석헌, 류달영 선생 등과 함께 만든 월간 잡지로, 1930년대 이후 한국 기독교계에 새로운 신앙운동을 일으켰다.

각고의 노력 끝에 애국지사인 아버지 김교신 선생의 독립운동 공로를 인정받게 된 딸 김정옥씨가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수집한 아버지 관련 자료를 들어보이고 있다.

김 선생은 1942년 성서조선 3월호에 "조와(弔蛙: 개구리의 죽음을 슬퍼함)"라는 제목으로 머리말을 썼다. 그는 이 글에서 일제하 우리 민족의 혼을 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살아남는 개구리에 빗대 썼다는 이유로 1년간 혹독한 옥고를 치렀다. 김 선생은 서울 양정고등보통학교(현재 양정고)에서 12년간 교사로 일하며 손기정 선생을 길러내기도 했다.

김정옥씨는 지난 2008년 2월 보훈처에 아버지를 독립유공자로 인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김씨는 "아버지와 함께 일했던 함석헌 선생과 류달영 선생이 2002년과 2004년 건국포장을 받는 것을 보고 용기를 냈다"고 했다. 하지만 보훈처는 "정황상 김교신 선생이 독립운동을 한 것은 인정되나 본인이 직접 작성한 1차 기록이 없으니 자료를 보충해 오라"고 반려했다.

김씨는 "본래 아버지가 소싯적부터 매일 써 온 일기가 수십 권이나 됐지만 다른 독립운동가에게 피해가 될까 염려해 모두 태우셨다"고 했다. 김씨는 2008년부터 아버지의 행적 찾기에 뛰어들었다.

44살에 숨진 아버지 흔적을 찾아 70대 딸이 전국 방방곡곡을 헤맸다. 김씨는 매일 광주 시내 도서관을 다니며 아버지에 대한 자료를 수집했다. 당시 발행된 잡지와 일간지 자료를 찾아 스크랩했다. 일본어로 된 자료는 꼼꼼히 번역했다. 아버지가 투옥됐다는 기록을 찾아 국립기록원, 국립현충원, 독립기념관 등 전국 기관을 누볐다. 독립운동가를 연구하는 교수들과도 이메일을 수시로 주고받았다. 자료를 찾으면서 '컴맹'이던 김씨는 컴퓨터도 능숙하게 다루게 됐다. 김씨는 "아버지의 옥살이 기록을 찾기 위해 경찰청 전과기록반에도 문의했지만 '아무리 찾아도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했다.

작년 9월 김씨는 아버지 김교신 선생에 관한 A4 용지 200쪽 분량의 자료집을 만들었다. 짧지만 뜨겁게 살다 간 아버지의 44년 생애를 요약한 이력서도 만들었다.

김씨는 "잠자리에 누울 때면 어린 시절 새벽 기도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차가운 손으로 뺨을 쓰다듬어주던 감촉이 생각났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2008년부터 올해 초까지 김씨는 보훈처로부터 5차례 '서훈 신청을 반려한다'는 회신을 받았다.

지난 3월 1일 김씨는 9시 뉴스를 보다가 눈이 번쩍 띄었다. 일제 때 이시카와 검사가 쓴 '보안법 사건'이라는 책자가 발견됐다는 소식이었는데, 책장을 넘기는 장면에서 '김교신(金敎臣)'이라는 한자가 보였던 것이다. 그렇게 찾던 아버지의 이름이었다. '보안법 사건'은 1919년 3·1운동 때 함흥에서 만세운동을 벌여 기소된 540여 명의 이름이 육필로 기록된 책이다. "찾았다!" 김씨는 미국에 있는 형제들에게 전화를 돌려 기쁜 소식을 전했다.

때마침 김 선생과 함께 성서조선 운동을 펼쳤던 송두용 선생 유족도 서훈 신청의 근거로 "김교신과 1년간 옥살이를 했다"는 1차 자료를 보훈처에 냈다. 보훈처는 이렇게 새로 제출된 문서를 근거로 김교신 선생의 독립운동 이력을 인정했다. 제65주년 광복절인 15일 김교신 선생 후손들은 광주광역시 시민회관에서 건국포장을 받는다.

김씨는 "이제 아버지가 편히 잠드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국립대전현충원에 묘역이 마련되면 미국에 묻혀 있는 어머니를 모셔와 합장(合葬)해 드릴 겁니다. 활짝 웃고 계실 부모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참 고생 많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