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모두 맨발이었다. 유리조각과 쇠붙이, 플라스틱 등 쓰레기와 개·고양이·닭 등의 배설물이 널린 흙바닥에서 판잣집과 폐차들 사이를 오가며 술래잡기를 했다. 키가 1m도 안 되는 한 아이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물체를 밟은 듯 오른쪽 넷째 발가락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나무판으로 얼기설기 지은 집에서 나온 아이 엄마는 마을에 하나뿐인 수도에 가서 아이 발을 씻겼다. 이 마을에서는 전기도 한 군데에서만 쓸 수 있다. 주민들은 이곳을 공동 식당으로 사용한다. 집집마다 전기 주전자를 가지고 와서 물을 데워 수프를 만들고 차를 끓였다.
7일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프리토리아시(市) 북쪽의 흐루투레이(Grootulei) 지역에 있는 이 마을 모습은 흑인 빈민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하지만 이곳 주민들의 피부색은 검지 않았다. 이들은 '화이트 스콰터(White squatter)'로 불리는 남아공 백인 빈민들이다.
대부분의 흑인 빈민촌은 아스팔트 도로 주변에 자리 잡는다. 미니버스인 '택시(taxi)'를 타고 일터에 쉽게 가기 위해서이다. 이 백인 빈민촌은 자동차 도로에서 2㎞ 떨어진 버려진 농장 터에 있었다. 7년 전 남편과 이혼 후 이곳에 왔다는 40대 코넬리아(Cornelia)씨는 "흑인 마을과 떨어져 백인들끼리 모여 살아야 안전하고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마틴 두브나흐(Duvenhage·30)씨는 이곳에서 21년을 살았다. 그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두 집뿐이었다"면서 "10여년 전부터 가난한 백인들이 몰려들었고, 현재는 80여명이 같이 산다"고 했다.
아파르트헤이트(흑인차별정책) 시절에도 못사는 백인이 있었지만, 당시 백인 정권은 이들에게 일자리와 집, 생활보조금을 전폭 지원했다.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가 무너지고 흑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백인만을 위한 특혜는 사라졌다. 3개월 전 빈민촌에 왔다는 빌리(Willie·63)씨는 6.6㎡(2평) 남짓한 판잣집 안에서 하얀 닭 한 마리와 함께 산다. 그는 "매일 아침 닭이 낳는 달걀로 끼니를 때운다"며 "이제는 흑인 정권이 우리를 차별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백인 보수단체들은 2003년부터 실시한 '흑인 경제권 강화 제도'(BEE·Black Economic Empowerment)가 백인 차별을 강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각 기업의 과장급 이상 흑인 직원 수를 점수화해 공공사업 입찰 등에 가산점을 주는 정책이다. 그러나 고용평등위원회측은 "아직도 백인 남성이 고위직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프리토리아대 사회학과 이르마 두플레시(Duplessis) 교수는 "2000개가 넘는 흑인 빈민촌에 비하면 백인 빈민촌은 80여개로 그 수가 적은 편이지만 백인들이 느끼는 충격은 상당하다"면서 "백인 빈민들은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에 대한 향수가 강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