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김태호 국무총리 내정자가 자신과 많은 부분에서 비슷한 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며 지켜봐 왔다고 한다. 실제로 가정환경이나 성장 과정, 생각에서 두 사람은 닮은 점이 적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은 선친이 소를 먹이는 일을 하던 '목부'였다고 자서전에 적고 있다. 김 내정자 부친 역시 시골에서 '소 장수'를 하던 가난한 농부였다. 두 집안 모두 '자녀들 학교 보내기도 힘들 정도로 가난한 살림이었다'는 점도 비슷하다.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이 대통령의 경우 어머니가, 김 내정자는 아버지가 자녀들 교육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그런 어머니를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고, 김 지사는 아버지에 대한 효심으로 유명하다. 때문인지 두 사람 모두 교육, 특히 가정교육을 늘 강조한다.
이 대통령은 어려운 형편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려 했지만 3년 내내 우등을 하면 학비를 내지 않는다는 조건을 보고 인문계가 아닌 상고에 진학했다. 김 내정자 역시 농사나 짓겠다며 학업을 포기하려다 농림학교에 입학했다. 고교 때 은사들의 격려 덕분에 명문대에 진학하고 고학을 했던 것도 비슷하다. 이 대통령은 동네에서 '천재'로 불리던 형 이상득 의원을 보면서 자극도 받고 위축도 되고 했는데, 김 내정자 역시 '잘 나가는 형'(현재 모 대기업 이사)을 보면서 자극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 형을 지금도 아버지 대하듯 어렵게 여기는 것도 비슷하다.
이 대통령은 대학 시절 6·3사태 등을 계기로 민주화 운동에 잠시 몸담은 적이 있고, 김 내정자는 상도동계 핵심 고(故) 김동영 전 의원 집에 머물면서 민주산악회와 인연을 맺고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대학을 졸업하면서 학생·사회운동은 잊고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이 대통령은 기업, 김 내정자는 정치로 방향을 잡았다는 차이가 있을 뿐 자기 분야에서 '초고속 출세'를 한 것도 똑같다. 이 대통령은 36세에 현대건설 사장, 김 내정자는 40세에 군수가 됐다.
김 내정자는 아버지 친구였던 김동영 전 의원 지역구(경남 거창)를 물려받은 이강두 전 의원 보좌관으로 92년 정치를 시작했다. 그 인연으로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거창에서 도의원·군수에 출마했고 경남지사로까지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이런 성장 과정뿐 아니라 '사고(思考)'에서도 김 내정자와 자신이 비슷한 점이 많다고 느끼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기업 시절 "세계로 나아가야 살 길이 있다"며 해외 진출을 적극 시도했다. 김 내정자 역시 경남지사 시절 한반도 지도를 거꾸로 걸어놓고 해양으로 뻗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김 내정자의 성장 과정이나 지사 시절 행보가 모두 자신이 평생 강조해온 '도전 정신'과 연결된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또 김 지사는 '386세대'답지 않게 도지사 시절에도 "좌파(左派)"라는 말을 거리낌없이 할 정도로 보수 성향이 강하다. 이 대통령은 자신이 서울시장 시절 지하철 파업에 대체 인력 투입으로 맞서서 이긴 것과 김 내정자가 공무원노조와의 싸움에서 물러서지 않은 것을 '원칙대로 하면 이길 수 있다'는 예로 함께 인용하기도 한다. 거기다 여의도 정치가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는 자치단체장 경험을 중요시하고 거기에서 성공했다는 점도 두 사람은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