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전 8시 15분 일본 히로시마(廣島)시 평화기념공원. 미 폭격기 B29에 실린 우라늄농축형 원자폭탄 '리틀 보이(Little Boy·암호명)'가 65년 전 투하된 바로 그 시각, 1분간의 묵념을 시작으로 위령제가 거행됐다.

이날 5만5000명의 참석자 가운데는 반기문(潘基文) 유엔 사무총장과 존 루스(Roos) 주일 미 대사도 포함돼 있었다. 유엔 사무총장의 위령제 참석은 처음, 미국 정부가 공식 대표를 보낸 것도 처음이었다.

반 총장은 공식 조사를 통해 6·25전쟁의 참화 속에 보낸 소년 시절을 회고하면서 "핵 없는 세상을 위해 우리들의 힘을 합칠 때가 왔다"고 말했다. 그는 위령제가 끝난 뒤 공원 내의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을 둘러봤다. 한국인 피폭자 박남주(朴南珠·77)씨도 만났다. 박씨는 피폭자이자 한국인으로서 2중의 고통을 겪어온 세월을 반 총장에게 설명했다. 일본인 피폭자들도 "유엔 사무총장이 참석했다는 것 자체가 (핵 없는 세상을 향한) 큰 진전"이라고 했다.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는 '비핵 3원칙'을 준수하겠다고 했고, 아키바 다다토시(秋葉忠利) 히로시마 시장은 피폭자들의 목소리를 담아 일본 정부에 '미 핵우산으로부터의 탈피'를 요구하는 등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참석자들 중에는 머지않아 미국 대통령이 위령제에 참석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고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그러나 '장외(場外)'의 모습은 달랐다. 존 루스 주일 미 대사는 미국 내 보수 그룹의 반발을 의식한 듯 '참석'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 위령제에 앞서 "핵무기 없는 세계를 실현하기 위해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내용의 짤막한 성명을 발표한 게 전부였다. 위령제에서는 딱딱한 표정을 거의 바꾸지 않았고, 위령제가 끝난 후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답하지 않았다. 이날 미국에서는 "참석 자체가 사과로 받아들여질지 모른다"(B29 조종사의 아들)는 등 반발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일본 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히로시마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는 재무장을 요구하는 극우의 목소리도 함께 높아졌다.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망언으로 알려진 다모가미 도시오(田母神俊雄) 전 자위대 항공막료장(공군참모총장 격)은 이날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히로시마에서 일본의 핵무장을 주장하는 강연을 했다. 로이터 통신은 "일본 보수 정치인들 사이에 중국의 급부상에 대항하기 위해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날 위령제에는 74개국에서 공식 대표를 보내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영국·프랑스·러시아·파키스탄 등 핵무기 보유국들도 대표를 보냈다. 중국은 대표단을 보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