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이 위험하다' 시리즈 취재팀의 노트엔 추악한 내용의 메모가 빽빽이 적혀 있다.
서울에 사는 주부 A씨는 시골 시댁에 맡겨둔 초등학생 자매가 친할아버지에게 성추행당한 사실을 뒤늦게 알고 법정 투쟁 중이다. 지방 초등학생 B양은 3년 전 동네 고교생들에게 붙들린 이후 지금도 밤에 자다 헛것을 본다. 학부모 C씨는 딸이 학교 잡역부에게 성추행당한 뒤 "시끄러워지면 서로 좋을 것 없다"는 교장의 말에 울화병이 생겼다.
가해자 상당수는 이웃 어디에나 있는 생활인이었다. 저마다 가족과 직장이 있고 입시(入試)와 승진에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었다. 어린이 수십명을 성추행해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D씨는 취재팀에 "체포된 뒤 맨처음 한 생각이 '앞으로 사회생활 어떻게 하나'였다"고 했다. 그는 해외 유학까지 다녀온 30대 전문직으로 부인과 아기가 있었다.
A씨·B양·C씨를 괴롭힌 가해자들은 친척이나 동네 오빠, 학교 직원이었다. 피해자는 분노와 혐오를 넘어 '인간에 대한 배신감'을 느낀다. 이 배신감은 지지부진한 사건 처리 과정을 거치며 '나라가 밉다'는 감정으로 증폭되고 있었다.
송기운 한국아동성폭력피해자지원센터 대표는 "범인 수사와 피해자 치료 과정이 공급자(정부) 중심으로 짜여 있다"며 "좀 더 수요자(피해자) 입장을 반영해달라"고 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으로 신고한 피해자에게 아직도 많은 일선 경찰이 심드렁하게 나오는 현실, 경찰 원스톱지원센터가 시·도당 하나뿐인 현실(서울·경기만 2곳), 먹고살기 힘든 피해자 부모가 지친 아이를 끌고 하염없이 전철·버스를 갈아타야 전국 10곳뿐인 해바라기센터에서 상담치료를 받을 수 있는 현실…. 성폭행 피해자들의 가슴을 또 한 번 무너지게 만드는 이런 현실을 바꿔달라는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