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는 치열한 제품 경쟁 속에 날로 품질이 진화하고 있다.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는 지난 6월 경희대 호텔관광대에서 소주 품평회를 열었다. 이날 품평회에는 43명의 소믈리에가 참가했고, 국내 소주 시장에서 점유율이 높은 11개 브랜드가 평가 대상에 올랐다. 소믈리에들은 공정한 평가를 위해 신분을 공개하지 않았으며, 라벨을 가린 상태에서 와인을 시음하고 평가하는 '블라인드 테이스팅(blind tasting)' 방식으로 소주 맛을 감별했다.
 
그 결과 보해의 잎새주(19.5˚)와 무학의 화이트(19.9˚)가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다. 국내 소주 전체 시장에서 점유율 1, 2위를 달리고 있는 진로의 참이슬(20.1˚)과 롯데주류의 처음처럼(19.5˚)은 각각 9위와 7위 자리에 올랐다.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유병호(兪炳昊) 기획 부회장은 "이번 품평회는 '와인 소믈리에 국제학술 심포지엄' 행사의 하나로 기획됐고, 소주는 한국을 대표하는 술인데도 맛을 감별하는 전문가가 없어서 시도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품평회에 참가한 43명의 소믈리에 중 한 사람이기도 했던 그는 "희석식 소주는 도수가 너무 높아 맛의 차이를 감별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국내 소주 업체의 광고에는 연예계 톱스타들이 출연하고 있다. 잎새주의 가수 백지영, 처음처럼의 이효리, 참이슬의 배우 이민정.

"품평회는 1번부터 11번까지 알코올 도수가 낮은 것부터 높은 것으로 순번을 매긴 후 냄새를 맡고 색을 확인한 다음 시음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평가 기준은 색(5점), 향(10점), 맛(10점), 여운(5점) 등 4가지 요소였는데, 소주의 특성상 색은 구분하기 어려워 11개 브랜드 공히 기본 점수를 주고 나머지 요소로 평가했지요."
 
그는 "향 역시 쓴맛 속에 녹아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고, 맛의 경우 무엇을 감미했느냐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났다"며 자신은 "같은 단맛이라도 천연재료의 느낌이 나는 맛에 점수를 주었다"고 말했다.
 
품평 결과에 대한 업계의 반응은 크게 엇갈렸다. 상위에 오른 업체는 관련 내용을 언론사에 배포하는 등 품평 결과를 홍보 및 마케팅 자료로 적극 활용했다. 반면 하위에 랭크된 업체들은 결과에 관심없다는 양 외면하는 분위기였다.
 
국내 소주 시장의 50%를 점유하고 있는 진로의 한 관계자는 "소믈리에는 와인 전문가이지 소주 전문가가 아닌 만큼 이번 평가는 의미가 없다"라며 "그들이 내놓은 결과가 소주 품질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은근히 날을 세웠다.

농촌진흥청 발효과 김태영 박사.

술 박사'로 불리는 김태영(金台榮) 농촌진흥청 발효이용과 차장은 "소믈리에들의 이번 평가는 기호도 조사 정도로 봐야 하지만 미각이나 후각이 일반인들에 비해 발달한 집단인 만큼 무시하기도 어렵다"며 이렇게 말했다.
 
"소주 맛을 전문적으로 평가하려면 제조 공정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소주는 20% 안팎의 주정(酒精)과80%의 물, 그리고 미량(微量)의 첨가물로 이뤄져 있고, 와인처럼 맛의 차이가 극명하지 않지요. 와인은 포도 종류나 숙성 기간에 따라 맛이 확연하게 다르지 않습니까. 소주 맛은 95% 알코올인 주정에서 잡내와 불순물을 제거하는 정제 기술, 물과 알코올이 따로 놀지 않고 잘 섞이게 하는 안정화 노하우, 미량의 첨가물인 감미료에 따라 맛의 차이를 보입니다."

희석식 소주와 증류식 소주의 차이
 
국내 소주 업체들은 소비자들의 혀를 끌어당기기 위해 어떤 방법들을 쓰고 있을까. 소주 맛의 비밀을 탐색하기 전 우선 희석식(稀釋式) 소주의 유래를 알아볼 필요가 있을 듯싶다.
 
증류주인 소주 양조법이 한반도에 유입된 것은 몽골이 침입한 고려 후기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뒷받침하듯 당시 몽골의 기지가 있던 개성, 안동, 제주 등에서 소주 제조가 성행했다. 이때의 소주는 쌀로 농주(農酒)를 빚은 후 맑은 부분(청주)을 증류하는 재래식 방법으로 제조됐다. 쌀이 귀해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소주는 고급주에 속했다. 당시 일반 민가에서 소주를 제조해 마시는 것은 극히 사치스러운 일이었다고 한다.
 
소주 제조 기술은 1920년대 일제에 의해 신기술(연속식 증류법)이 도입되면서 급속히 발전했다. 희석식 소주가 제조된 것도 이 무렵부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술 전문가들은 "주정 공장이 생겨나고, 소주가 대중주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1965년 양곡령이 내려지면서"라고 말한다. 식량 부족을 이유로 쌀로 술을 빚는 일이 법으로 금지되자 감자나 고구마가 원료인 주정에 물을 섞어 만드는 희석식 소주가 대중화됐다는 것이다.
 
희석식 소주는 알코올 95% 이상의 주정에 물을 타고 감미료로 조미(助味)한 술이다. 주정은 일종의 알코올 농축액으로, 쌀, 보리, 옥수수 등의 곡류(穀類)와 고구마, 감자, 타피오카 등의 구근류(球根類)에 함유된 전분을 발효시킨 후 연속식으로 증류해 만든다. 사탕수수나 사탕무에 함유된 당분을 발효시켜 만들기도 한다.
 
증류식 소주는 곡류를 발효시켜 증류한 40˚ 안팎의 순수 원액을 일컫는다. 일부 애주가들 사이에서는 희석식 소주를 화학주로 오인하고 있으나 따지고 보면 희석식 소주 역시 증류주의 하나이다. 일본에서는 이런 오해를 막기 위해 희석식 소주를 '갑류 소주'로, 증류식 소주를 '을류 소주'로 바꾸어 부른다고 한다.
 
농촌진흥청의 김태영 차장은 "주정의 질적 향상과 정제 기술의 발달로 소주의 품질은 몰라보게 좋아졌다"며 "한국의 주정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말했다. 
 

[※자세한 기사는 월간조선 8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