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이 화두가 되는 때, 나는 백남준을 떠올린다. 그가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통찰을 거쳐 암시한 소통체계에 대한 폭넓고도 뚜렷한 인식 때문이다.

백남준의 작품을 살펴보면 우체통, 라디오, 전신, TV 등 메시지와 감정을 전달하는 매체들이 활용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에게 비디오란 종이, 우편, 전화, 위성, 인터넷으로 이어지는 소통체계의 일부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인류의 역사와 기술의 발전이 소통에 대한 욕구와 밀접히 관계되어 있음을 깨닫고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모든 소통이 종국에는 인간과 인간의 정신적 만남을 향해야 한다는 핵심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어쩌면 인류의 역사 자체가 인간과 인간의 만남에 의해 시작된 장구한 드라마인지 모른다. 말을 타고 밖으로 나서는 인간은 가 보지 못한 벌판에 살아 있을 또 다른 존재를 꿈꾼다. 그리고 그와 소통하기를 희구한다. 인간은 먼 곳에 있는 또 다른 사람에게 소식을 전하기 위해, 그가 다룰 수 있는 가장 빠른 동물인 말[馬]에게 자신의 말[言]을 띄웠다. 백남준 역시 말[馬]을 작품 속에 보여주곤 했다. 결국 그는 그 시대의 가장 빠른 말[馬]인 전파와 위성 TV를 타고 세계 곳곳을 연결하려고 했던 셈이다.

우리는 미니홈피와 트위터 등 더욱 다채로운 말[馬]을 가진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건 사람과 사람의 정신적 만남, 그 반짝임이 빚어내는 신비로움을 더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백남준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