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食客)' '타짜' 같은 만화를 그린 허영만(63) 화백이 요즘 자전거에 푹 빠졌다. 동료 10명과 두 달 뒤 한반도 해안선 일주를 하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흐지부지되지 않도록 아예 출발도 9월 셋째 주 금요일(17일)로 정했다.

그런 허 화백이 석 달 전까지는 요트로 한반도 해안선을 누비고 있었다. 동료 13명과 작년 6월 경기도 전곡항을 떠나 서해안~남해안~제주도를 지나 울릉도·독도까지 돈 것이다. 그가 5월 3일 항해를 마친 곳은 강원도 삼척항이었다.

11개월 동안 요트로 해안선 3075㎞를 훑은 그는 왜 다시 자전거로 전국을 돌겠다는 것일까. 요트를 타며 그렇게 했던 고생이 모자랐던 것일까. 22일 첫 합동 훈련을 위해 서울 잠실선착장에 나온 그에게 이유를 물어봤다.

자전거 전국일주에 도전장을 던진 허영만 화백이 한강시민공원에서 페달을 밟고 있다. 그는“환갑이 지난 나이에 이런 도전에 나설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며 단단해진 장딴지를 자랑했다.

돌발적으로 시작된 요트 일주

허영만은 2007년 여름 한강에서 요트에 입문했다. 숨 가쁘게 만화를 그리다 자동차의 휘발유 눈금 줄어들 듯하는 에너지를 등산으로 채워넣던 그에게 요트는 '자유', 그 자체였다고 한다. 자유? 허영만은 "물길과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남 여수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항해를 꿈꿨던 허 화백이었다. 요트 일주는 2008년 12월 '돌발적'으로 계획됐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술을 마시던 중 나온 허영만의 제안에 그와 함께 등산 다니던 '침낭과 막걸리' 멤버들이 쌍수 들고 환영한 것이었다. 허 화백과 동료들은 곧바로 1985년에 만들어진 낡은 요트를 샀다.

그 배가 얻은 이름은 '집단가출호(號)'. 길이 40피트(약 12m)짜리 20인승 요트였다. 12구간으로 나눈 해안선 코스를 한 달에 3일씩 요트를 타고 도는 일정은 말 그대로 '생고생'이었다고 한다.

잠은 모두 밤비를 맞으며 바닷가 침낭 속에서 잤다. 모기에 물려 얼굴이 경기를 마친 복싱 선수처럼 퉁퉁 부어 병원에 갔던 동료도 있었다. 치과 의사였던 대원은 흔들리는 배에서 넘어져 앞니가 깨지기도 했다.

허영만 역시 낚싯바늘에 손가락이 관통될 뻔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팀원들끼리 바람의 방향과 세기에 따라 구령을 넣어가며 돛의 방향을 바꾸고 높은 파도를 넘는 과정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었다.

허 화백은 "한국을 도는 동안 목소리를 높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그는 작년 11월 거문도 동도분교에서 4명뿐인 전교생에게 애니메이션 강의를 해줬다. 그 해 8월엔 전북 어청도에서 마을 음악회를 열어주기도 했다.

자전거와 함께 꿈꾸는 것들

허영만은 이번에 자전거를 택하면서 요트와 비슷한 점이 많다고 했다. 모두 동력 없이 몸이 고생해야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살면서 계속 움직이고 몸으로 느껴야 한다는 게 그가 믿는 '생활의 지론'이다.

허 화백이 자전거를 제대로 타기 시작한 것은 7년 전부터였다. 등산을 좋아하던 그는 가끔 산악자전거를 타며 체력을 보충했다고 한다. 그랬던 그는 최근 500만원 정도 되는 자전거를 장만했다.

그 자전거로 매일 경기도 판교의 집에서 서울 수서동의 작업실까지 약 15㎞를 오간다. 목요일엔 동료들과 2시간가량 자전거로 40㎞를 달리며 체력 쌓기에 여념이 없다. 아무 탈 없이 자전거 일주를 마치고 싶어서다.

그는 왼쪽 무릎의 상처를 보여주며 "고통을 즐길 줄 알아야 그 후에 올 기쁨을 누릴 자격이 생긴다"고 했다. 잠실선착장에 모인 동료들은 "열심히 자전거 타더니 장딴지가 단단해졌다"고 허 화백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허영만에겐 한시라도 빨리 자전거 일주에 나서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나이 들면 원해도 움직일 수 없다는 조바심 때문이다. "환갑 지난 이 중 나처럼 자전거로 전국을 돌 수 있는 사람이 몇 있겠느냐는 자부심도 사실 있지요."

해안선을 따라 꼼꼼히 돌아다니며 각지의 토종 음식을 경험하는 것도 허 화백이 기대하는 것 중 하나이다. 요트 일주를 하면서도 생전 처음 먹어보는 음식에 탄성을 내지른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해안선 음식 열전이 다음 식객 만화의 주제가 될 수도 있다고도 했다. 동료들과의 팀워크, 해안선 일주 도중 만나게 될 새로운 사람들과 맺게 될 인연도 충분히 기대할 만한 것들이다.

허영만은 "당구장이나 술집에 박혀 있으면 몸이 망가진다"며 "야외에서 사람들과 함께 할 줄 알아야 진정 인생을 즐길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요트 일주 뒤 그가 출간한 책의 제목은 '집 나가면 생고생, 그래도 나간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