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동안 남자농구 대표팀의 시스템은 '기본'이 안 돼 있었다.

태극마크는 선수들 사이에서 기피 대상이었다. 선수들은 표면적으로는 "태극마크를 달아서 기쁘다"고 했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았다.

여관방을 전전하는 열악한 지원과 짧은 준비기간. 긴 프로리그의 시즌을 치른 선수들은 잔부상이 많았다. 몸이 곧 재산인 선수들은 대표팀의 부름을 너무나 부담스러워했다. 대표팀 명단이 발표되면 절반 이상의 선수들이 부상을 이유로 정상적인 훈련을 소화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 와중에 선수와 구단의 이기주의가 판을 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대비한 충분한 준비기간으로 1, 2차에 걸친 미국 전지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유재학 대표팀 감독은 "정상적인 훈련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들을 위주로 대표팀을 선발하겠다"고 일찌감치 천명했다. 효율적인 시스템의 확립과 유 감독의 확고부동한 선발원칙이 결합되면서 남자농구대표팀의 포지션 경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뜨겁다.

아시안게임 최종 엔트리는 12명이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1차 전지훈련을 치른 대표팀은 15명의 선수로 구성돼 있다. 유 감독은 "선수들의 컨디션 점검을 위해 2명을 추가로 데려갔다"고 했다. 12명의 최종명단은 9월20일까지 대한체육회에 제출하면 된다. 그러나 유 감독은 "한국은 아시아에서도 키가 작기 때문에 압박수비와 패턴공격 등 꽉 짜여진 조직력이 중요하다. 때문에 1, 2차 전지훈련에 합류하지 못한 선수들이 발탁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2차 전지훈련이 끝난 뒤 최종명단이 결정될 것"이라고 했다. 2차 LA 전지훈련은 다음달 12일부터 27일까지 실시된다. 유 감독은 이미 국내에 남아있는 하승진, 방성윤, 주희정, 김승현에게도 12일까지 대표팀에 합류할 수 있는 몸상태를 만들어놓으라고 지시한 상태.

모든 것을 고려해 보면 가드진에는 이정석과 양동근의 발탁이 확정적이다. 이정석은 최근 대표팀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다. 양동근도 꾸준하다. 슈팅가드 조성민도 안정권이다. 슈팅가드 포지션의 희귀함에다 공수가 능하고, 1대1 돌파능력도 좋다. 반면 이승준과 경쟁해야 하는 전태풍의 경우 잔부상으로 합류여부가 불투명하다. 경기력이 들쭉날쭉한 강병현도 그렇다. 김승현과 주희정 역시 부상으로 합류 가능성이 반반이다. 유 감독은 "여의치 않을 경우 박찬희를 데려갈 수 있다. 다른 건 부족하지만 스틸과 수비능력이 탁월하다"고 했다.

포워드진에서는 이변이 없는 한 양희종과 이규섭의 발탁이 확실시된다. 전지훈련 도중 어깨부상을 입었지만 양희종은 강력한 수비력으로 이미 포워드진 한 자리를 꿰찬 상태. 이규섭 역시 이번 전지훈련 동안 수비력이 대폭 보강되면서 유 감독의 눈도장을 확실히 찍은 상태다. 김성철 송영진도 특유의 성실함으로 좋은 인상을 남겼다. 변수는 방성윤이다. 유 감독은 "수비는 아니지만 공격에서 방성윤이 대표팀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100% 컨디션이 아니면 뽑기 쉽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센터진은 김주성과 오세근이 붙박이다. 신예 김종규의 기세가 무서운 가운데 하승진이 변수가 될 전망. 하승진이 정상적으로 돌아오면 김종규와 함지훈이 합류하기가 쉽지 않다. 또 이승준은 귀화선수가 1명밖에 뛸 수 없는 규정에 따라 전태풍과 경쟁해야 한다.

대표팀 한 관계자는 "주전경쟁이 장난이 아니다. 선수들이 자존심을 걸고 하는 것 같다.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했다. 과연 누가 살아남을까. 일단 남자농구로서는 확실한 청신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