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의 성지(聖地)'에서 한국 골프의 자존심을 지킨 이는 스무살 아마추어 정연진이었다.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열린 브리티시오픈. 공동 12위(4언더파)로 최종 4라운드를 시작한 정연진은 18번 홀 이글을 비롯해 버디 2개, 보기 4개로 이븐파를 기록, 4언더파 284타로 대회를 마쳤다. 19일 오전 1시(한국 시각) 현재 공동 16위. 아마추어로는 유일하게 컷을 통과한 정연진은 나흘 내내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며 최경주, 양용은 등 미 PGA투어에서 활약하는 선배들을 제치고 한국 골프의 얼굴 역할을 했다. 아마추어 선수 중 최고 성적을 낸 선수에게 주는 브리티시 오픈 실버 메달도 자연스럽게 정연진의 몫이 됐다.

정연진은 지난달 스코틀랜드 뮤어필드 골프장에서 열린 브리티시 아마추어챔피언십 우승자 자격으로 이번 대회에 출전했다. 1885년 시작된 브리티시 아마추어챔피언십에서 아시아 선수가 우승을 차지한 것은 정연진이 처음이었다. 아마추어 대회이지만 뮤어필드에서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 올린 것은 정연진이 항아리 벙커와 질긴 러프로 상징되는 브리티시오픈에서 경쟁력이 충분하다는 뜻이었다.

15차례나 브리티시오픈이 열린 뮤어필드는 잭 니클라우스가 "러프에 빠진 공을 찾으려고 골프백을 내려놓았다가 골프백까지 잃어버리는 선수가 나온다"고 말할 정도로 어려운 코스다.

정연진은 "2002년 어니 엘스가 브리티시오픈에서 우승하는 장면을 보고 골퍼로서 꿈을 키웠다"면서 "항상 브리티시오픈을 나의 첫 메이저 대회로 삼고 싶었는데 유서 깊은 올드코스에서 그 꿈을 이뤘다"고 말했다. 현지에서는 정연진이 1998년 저스틴 로즈(4위), 2008년 크리스 우드(5위)를 뛰어넘는 아마추어 최고 성적을 낼 수 있을지 관심을 보였다.

부산 출신인 정연진은 아버지의 권유로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골프를 시작했다. 2006년 국가대표 상비군을 지낸 정연진은 2008년부터 호주 멜버른에서 살며 프로 데뷔를 준비했다. 1m77, 75㎏의 체격을 갖춘 정연진은 정교한 퍼팅이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이번 대회에서도 3라운드까지 총 퍼트 수가 91개뿐이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올드코스의 까다로운 그린에 고전하며 퍼트를 99개나 한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성적이다.

정교한 쇼트게임 능력과 함께 파워도 갖췄다. 정연진은 3라운드 드라이버 샷 평균 비거리가 310.5야드였다. 짧은 파4 홀에서는 티샷으로 바로 그린을 노릴 수 있을 정도의 장타자이다. 정연진은 "한국 여자골프는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데 남자라고 안 될 이유가 없다.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는 날까지 도전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