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동방사회복지회 사무실에 미국인 그렉 뢰트거(Roettger·44)씨와 부인 제니(Jenny·42)씨, 딸 헤일리(Heyley·9)양과 아들 에이제이(AJay·6)군이 긴장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한국말을 거의 못하는 제니씨 가족 앞에 한 살배기 수민(가명)이 나타났다. 수민이는 미혼모의 딸로 1년 전 복지회로 왔다. 수민이는 자신을 키워준 위탁 부모에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헤일리양이 고무공을 건네주자 아장아장 걸어 다가갔다. 처음엔 낯설어하던 에이제이군도 수민이 머리를 쓰다듬더니 어머니에게 "쉬즈 소 큐트(She's so cute·너무 귀여워)"라고 속삭였다.

이날 제니씨 가족은 수민이를 새 가족으로 맞았다. 제니씨는 눈물을 흘렸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우리를 따라가게 된다는 상황이 슬프다"며 "하지만 가정이 없는 사람에게 가정을 준다는 것이 얼마나 보람있는 일인지 커 오면서 느꼈다"고 했다. 그는 "내가 (입양되면서) 얻은 행운과 기회를 보답하기 위해 한국인 아이를 입양하게 됐다"고 말했다.

1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동방사회복지회에서 미국인 제니씨 가족이 처음 만난 한 살배기 수민(가명)이와 놀고 있다. 6·25 참전용사에게 입양된 한국계 혼혈인 제니씨는 수민이를 입양하기 위해 38년 만에 한국에 왔다.

제니씨는 6·25전쟁 참전용사 로버트 홀(Hall·92) 미 육군 예비역 대령이 1972년 한국에서 입양한 딸이다. 한국인 어머니와 미군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제니씨는 홀 대령이 입양할 때 김샬리(당시 4세)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그는 홀 대령과 함께 미국에 가서 제니(Jenny)라는 새 이름으로 자랐고 지금은 중년 주부가 됐다. 제니씨는 이날 입양된 지 38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다. 자기 양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한국인 여자 아이 수민이를 입양하기 위해서였다.

59년 전인 1951년 홀 대령은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지평리에서 벌어진 '지평리 전투'에 군의관으로 참전했다. 지평리 전투는 미군과 프랑스군 6000명이 중공군 3만명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전투다. 이 승리로 휴전회담이 시작돼 6·25전쟁을 끝내는 계기가 됐다. '지평리를 사랑하는 모임'(지평사모) 김성수 대표(법무법인 아태 대표변호사·66)는 "홀 대령은 당시 부중대장이었던 린 프리먼(Freeman·87) 대령 등 부상 장병을 치료하고 후송하는 일을 맡았다"고 전했다.

홀 대령은 휴전 이후 베트남전에 참전했고 그 후엔 하와이에서 일하던 중 1972년 한국에 잠깐 근무하러 왔을 때 제니씨를 입양했다.

참전용사 로버트 홀 미 예비역 대령.

제니씨는 1971년 겨울 경북 칠곡군 왜관읍 한 길가에 버려진 채 발견됐다. 당시 3살이던 제니씨는 가무잡잡한 피부에 큰 눈을 가진 혼혈아였다. 아버지가 미군이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친부모에 대한 자료는 남아있는 게 없다.

사단법인 대한양연회(현 대한사회복지회)가 제니씨를 돌봐주다 홀 대령이 한국인 아이 입양을 원한다는 말을 전해듣고 두 사람을 연결해줬다. 당시 홀 대령은 제니씨를 여섯째 아이로 입양하며 "6·25 당시 전쟁고아들을 보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말했다고 한다.

홀 대령은 제니씨를 키우면서 한국 이야기를 자주 했다고 한다. 홀 대령은 제니씨에게 "내가 한국에 있을 때는 한국에서 생산되는 물건이 고작 탄피로 만든 재떨이뿐이었지만, 지금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며 "네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나도 한국의 자유를 위해서 싸웠다는 게 자랑스럽다"고 말했다고 한다.

제니씨는 "한국인 아이를 입양한다고 말했더니 아버지가 '너무 짜릿하고 멋진 일'이라고 말했다"며 "빨리 가서 아버지에게 수민이를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제니씨는 "친부모 생사를 알 수 없지만, 미국으로 입양되기 전까지 1년간 나를 돌봐주던 위탁모를 찾고 싶다"고 했다. 대한사회복지회 기록에는 제니씨 위탁모 이름은 김순임이고,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에 살았던 것으로 적혀 있다. 현재 나이는 80대로 추정된다. 제니씨는 수민이와 하룻밤을 자고 16일 미국으로 출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