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화 이화여대 교수·소설가

"사람을 털고, 돈을 뺏고, 나라를 훔치자!"를 광고 카피로 하는 게임이 있다. 폭력성과 잔혹성 때문에 중국에서도 '불건전 게임'으로 위법 처리된 작품이다(신화사 2009년 10월 9일 보도). 이 게임은 올해 3월부터 한국에서도 '15세 이상 이용가(可)' 등급으로 서비스되어 청소년층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7월 현재 웹게임 부문 2위에 랭크되어 있다. 바로 (주)조이포트가 개발한 '열혈삼국'이다.

'열혈삼국'은 이제까지 한국 사용자들이 경험했던 게임과는 무척 다르다.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인 '열혈삼국'은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이 주류인 한국 게임처럼 부활이라는 것이 없다. 게임 내의 전투에서 자신의 모든 성(城)이 점령되면 영원히 죽는다. 말하자면 완전한 '섬멸'이 가능한 것이다.

이제까지 한국 사용자들은 계정을 해킹당하지 않는 한 자신의 캐릭터를 뺏기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열혈삼국'에서는 '명장(名將)'이라 불리는 다른 사용자의 서브캐릭터를 강탈해서 팔 수가 있다. 사용자들은 명장을 육성하면서 많은 시간과 노력과 애정을 들이기 때문에 이런 사태의 충격을 감당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 성과 명장을 모두 빼앗긴 뒤 정신착란을 일으켜 게임의 전체 채팅창에서 며칠씩 울부짖는 30대 노총각, 명장을 빼앗긴 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일으켜 이유 없이 8살 난 아들을 때리는 40대 가장, 현금 20만원을 걸고 뺏어간 자를 죽여달라는 살인청부 광고 등이 게시판을 장식하고 있다.

게임은 겉보기에 국경을 뛰어넘는 보편성을 갖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게임을 생산한 국가의 문화적 특수성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 중국이 만든 '열혈삼국'은 '농촌으로부터 도시를 포위하고 마침내 나라를 빼앗아 황제(皇帝)의 전제적 지배를 이룩한다'는, 중국인에게 가장 친근한 역사 스토리가 게임의 알고리즘이 되어 있다. 이것은 항우와 유방의 시대부터 삼국지 시대를 거쳐 주원장, 누르하치, 모택동에 이르는 중국 역사의 상징적 반영인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중국 게임의 문화적 특수성을 한국인이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에 있다. 현재의 등급심의 제도와 게임운영 제도로는 이런 극도로 잔인하고 무자비한 게임이 청소년들에게 반(反)사회적, 패륜적 의식을 심어주는 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악성 중국 게임의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전심의 중심인 현재의 등급심의 제도를 사후심의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한정된 시간에 많은 게임을 심의하는 게임물등급위에서 사전에 게임의 전모를 판단하기는 매우 어렵다. 게임이 일정기간 서비스된 후 심의하여 서비스 중지 명령 등 행정조치를 취하는 새로운 제도가 필요하다.

아울러 게임을 수입하는 회사는 자신이 배급하는 게임을 한국의 국민 정서에 맞게 책임지고 현지화(로컬라이징)한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콘텐츠는 제거하고, 게임 규칙도 수정해야 한다. 게임은 수입해서 팔면 끝나는 상품이 아니라 문화적 가치를 가진 서비스이다. 서비스 중에도 게임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성의를 가지고 관찰하고 관리하는 자세가 요청된다. 폭력적이고 잔혹한 중국 게임에 중독된 우리 청소년들이 커다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 다음에야 부랴부랴 대책을 마련하는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 빚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