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미 엔터테인먼트부 기자

"그 책들,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어느 집에나 있을 수 있는 책이에요. 단지 오해가 생기는 걸 막기 위해 살짝 모자이크 처리를 한 건데…."

MBC TV 'PD수첩'의 김태현 책임프로듀서는 "조작(造作)은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며 "모자이크가 조작이란 지적은 억울하다"고 했다. 지난달 29일 방송된 'PD수첩-대한민국 정부는 왜 나를 사찰했나' 편에서 피해자 김종익(56)씨의 소장 도서 제목을 흐리게 지운 것에 대한 해명이다.

'PD수첩'은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불법 사찰 의혹과 관련, 김씨의 인터뷰를 내보내면서 약 45초간 김씨 집 책꽂이에 꽂힌 책 제목이 보이지 않도록 처리했다. 책 제목은 '한국 민중사', '현대 북한의 이해', '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 '조선노동당 연구', '혁명의 연구', '사회주의 개혁과 한반도' 등이었다. 공교롭게 모두 북한·사회주의 관련 서적이다.

'PD수첩'의 문제 제기는 기본적으로 옳았다. 김씨가 이들 책의 독자란 사실이 정부의 불법 사찰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정부가 잘못했다고 해서 그릇된 보도 관행마저 옳은 것은 아니다.

MBC는 "심각한 조작이 없었다"고 하지만, 단순 사실을 누락하거나 감추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들의 판단은 달라진다. 재작년 광우병 쇠고기 파동 때, 'PD수첩'은 '다우너 소'(주저앉는 소)를 '광우병 걸린 소'라고 소개하고 아레사 빈슨 모친의 발언 일부를 누락·오역하는 것만으로 시청자들에게 엄청난 '가짜 공포'를 안겨줬다.

어떤 이의 독서목록은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 주요 요소 중 하나다. 그렇기에 'PD수첩'의 모자이크는 주민등록번호나 특정상표를 가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정보 가공'이다. 시청자들이 기분 나빠하는 것도 제작진이 시청자의 판단을 유도하려 했기 때문이다. '의도가 선하면 방법은 어떠해도 좋다'는 식의 보도 관행은 언제쯤 사라질까.

['광우병 시국'에 불지른 PD수첩… 기름 부었던 좌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