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한 건물 2층 월간 대중문화 잡지 '빅이슈(The Big Issue)'를 만드는 '빅이슈코리아' 사무실에 노숙인 4명이 들어섰다. 노숙인들의 자립을 돕는 이 잡지 판매사원이 되기 위해서다. 사무실 책상 위에는 5일 창간하는 '빅이슈'가 놓여 있었다. 창간호 표지 모델은 노숙인이었다가 자립해 고물상 주인으로 변신한 신치호씨였다. 사진 속 신씨는 유아용 고무젖꼭지를 물고 유아용 모자를 쓴 채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밑에는 큰 글씨로 '빅이슈가 태어났다, 나도 다시 태어났다'라고 적혀 있었다.

직원이 "빅이슈를 열심히 팔면 자립할 수 있다"고 설명하자 홍삼용(65)씨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홍씨를 비롯한 노숙인 4명은 '구걸하지 말라' '깔끔하게 다녀라' 같은 행동수칙을 교육받았다.

5일 노숙인들의 자립을 돕기 위한 대중문화 잡지 ‘빅이슈(The Big Issue)’가 창간된다. 창간을 하루 앞둔 4일 서울 영등포구 빅이슈코리아 사무실에서 판매국장 진무두(사진 오른쪽 안경 쓴 사람)씨와 판매사원이 된 노숙인들이 창간호를 손에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빅이슈는 세계적인 영국 화장품회사 '바디샵'의 창업자 애니타 로딕의 남편 고든 로딕이 친구인 존 버드와 함께 런던에 넘쳐나는 노숙인 자립을 위해 1991년 창간한 잡지다. 노숙인들이 길거리에서 빅이슈를 팔아 판매대금 일부를 수입으로 가져간다. 기사와 내용은 '재능 기부' 형태로 채워진다. 유명인이 대가 없이 기고한다. 축구선수로 유명한 데이비드 베컴과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 같은 인사들이 무료 표지모델로 나섰다. 영국에서는 매주 발행되고 한 달에 65만권 정도가 팔린다. 영국 노숙인 5000여명이 빅이슈 판매로 자립에 성공했다.

우리나라에선 비영리민간단체인 '거리의 천사들'이 그 빅이슈를 본떠 발행하게 됐다. '빅이슈코리아'를 세우고 서울시에서 예비 사회적 기업 지정도 받았다. 한국판 빅이슈는 한 권에 3000원이고, 이 중 1600원이 노숙인 수입으로 돌아간다.

36쪽짜리 빅이슈 창간호에는 판매사원으로 탈바꿈한 노숙인 14명 중 9명의 사진과 이름, 다짐 등이 실렸다. 빅이슈코리아 박인훈 대표는 "판매사원들은 잡지를 팔다가 잊고 지내던 자녀와 만날 수 있고 자신을 쫓아다니던 사채업자와 마주칠 수도 있다"며 "제 힘으로 일어서기 위해 두려움을 잊고 세상에 자신을 공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숙인 문모(56)씨는 "빅이슈 판매사원이 돼서 10년 노숙생활을 마치고 싶다"면서 "하지만 예전에 공공근로를 하다 과거 알던 동료를 만나 부끄러워 그만둔 적이 있다"고 걱정했다. 그러자 강희석(35)씨가 "아는 사람이 있으면 한 부라도 더 팔 수 있지 않겠어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강씨는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에서 빅이슈를 판매할 예정이다.

첫 발간일인 5일 오전에는 영국의 빅이슈를 공동 창립했던 존 버드씨가 오세훈 시장을 만나 제1호 잡지를 판매할 예정이다. 판매사원들은 각자 지정된 37개 구역에서 이날 낮 12시부터 판매에 나선다.

1998년 아내와 사별한 홍씨는 "당시 자살까지 생각하며 삶을 포기했었다. (빅이슈가) 잘 팔려 돈이 벌리면 사업도 하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