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는 윈도7에는 무비 메이커(영상제작·편집 프로그램)가 없어요."

"그럼 다운로드를 받아야지. 무비 메이커도 좋지만 스위시(플래시무비 제작 프로그램)도 괜찮더라고요."

컴퓨터 전문용어를 술술 뱉어내는 이 사람들은 10대도, 20대도 아닌 바로 60대 어르신들이다. 지난달 19일 오전 10시 서울에서 경기도 오산 물향기수목원으로 가는 1호선 천안행 급행열차 안에서 '용산 UCC(사용자가 직접 제작한 콘텐츠)클럽' 회원 신창범(68)씨와 장상례(64)씨는 사진과 영상 제작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다. 10여명의 다른 어르신 회원들도 사진에 관련된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용산 UCC클럽’회원들이 경기도 오산 수청동 물향기수목원에서 꽃과 풀, 나무 사진을 찍고 있다.

◆UCC 영상작품 만드는 어르신들

이날은 '용산 UCC클럽' 회원들이 출사(出寫)에 나선 날이다. 지난해 용산노인종합복지관에서 열린 '꿈꾸는 청춘예술대학'의 'UCC 만들기' 강좌 수강생들이 모여 만든 동아리다. 회원인 이규석(78)씨는 "우리 노인들 기억은 금방 희미해지기 마련"이라며 "배운 내용들을 실습하면서 기억의 끈들을 붙잡고 청춘도 되찾고 있다"고 말했다.

"구도, 색온도, 화각을 다 고려해야 좋은 사진이 나와요."

오산 물향기수목원의 푸른 이파리들이 먼발치에서 얼굴을 드러내자, UCC클럽 회원들은 저마다 사진기를 꺼내 들기 시작했다. 파드득나물·수크령 등 여름 이슬이 맺힌 풀, 나무들을 촬영하는 어르신들은 카메라를 이리저리 움직이기에 바빴다.

UCC 동아리 회원들은 매주 둘째 주 토요일에 출사를 나간다. 출사에서 다녀오면 지칠 법도 한데 각자 UCC를 만들어 다음 카페(cafe.daum. net/ysniucc)에 올리고, 덧글을 달아 의견을 공유하기도 한다. 매주 넷째 주 토요일에는 복지관에 모여서 사진과 영상에 대해 서로 물어보고 정보를 교환하는 시간을 갖는다.

동영상 소재는 풍경부터 인물까지 다양하다. 지난해 수업시간에는 회원들의 갓난아기 때부터 백발노인이 되기까지 사진들을 모아 '영상 자서전'을 만들기도 했다. 장상례씨는 "손자가 태권도 심사 볼 때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편집해 줬더니, '우리도 못하는데 할머니 너무 대단하다'며 아주 좋아하더라"고 말했다.

신창범 회장은 "복지관은 더이상 할 일 없는 노인들이 시간만 죽이는 곳이 아니다. 정적인 취미보다 직접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만드는 체험형 취미를 통해 더 젊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적 수업 대신 체험 중심 노인대학"

'용산 UCC클럽' 회원들이 사진과 동영상 찍는 법을 배운 '꿈꾸는 청춘예술대학'은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대표이사 안호상)이 운영하는 노인 특화 문화예술 교육프로그램으로, 연극·뮤지컬·영화·국악·공공미술·영상영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강의는 시내 복지관, 문화센터 등에서 열린다.

교실에 앉아서 수동적으로 강의를 듣는 기존의 노인대학과는 거리가 멀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UCC, TV뉴스를 만들고 뮤지컬 공연도 하는 등 '체험형' 활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랑구 신내노인종합복지관은 영상미디어 교육을 받은 뒤 어르신들이 직접 기자가 되어 취재를 하고 앵커가 되어 카메라 앞에 서서 '우리 동네 생생뉴스'를 제작한다. 꿈꾸는 청춘예술대학에서 배운 재능들을 공연과 발표회, 전시회 등을 통해 발표하기도 한다. 지난해 마포구 서대문문화회관에서 연극 강좌를 수강한 50여명의 어르신은 올해 서울시 연극경연대회에서 '홍도야 울지 마라'를 열연해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종로구 서울노인복지센터의 은발DJ가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 '라디오 실버스타'는 인터넷 방송을 타고 있다.

엄연숙 문화예술과장은 "꿈꾸는 청춘예술대학은 어르신들이 삶의 주체적인 생산자로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문화예술 창작열을 북돋아 주고 있다"며 "교육이 끝난 후에도 어르신들이 동아리 활동을 통해 사회에 참여하고 노인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